세계에서 근대적 상수도시설을 제일 먼저 갖춘 도시는 영국의 런던이다.

이미 1619년에 런던시는 전역에 부설된 파이프를 통해 가정에 급수를
시작했다.

그뒤 19세기초에 들어와서야 강물을 인공으로 여과시킨 다음 급수하는
수도시설이 파리에 설치되어 이것이 19세기 후반부터 전세계로 급속히
보급돼 나갔다.

한국에 펌프식 상수도시설이 도입돼 수도물 급수가 처음 이루어진 것은
1902년 부산에서였지만 이것은 아주 소규모였다.

그래서 한국상수도의 첫출발이라고 할수 있는 것은 영국인 회사인 조선
수도회사가 1906년8월에 착공해 2년동안의 공사끝에 완공한 뚝도수원지가
급수를 시작한 1908년 9월부터라고 보는 것이 옳다.

이 수원지는 1일에 1만22,500t의 생산시설을 갖추어 12만명에게 1일 1인당
100l의 물을 공급할수 있었다.

일제시대를 거친후 광복당시에는 전국 83개도시, 200만명의 급수인구에
최대급수량이 27만2,000t으로 늘어나기는 했으나 이정도의 급수량으로는
절대공급량마저도 부족해 서울에서는 심한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

"서울의 아침은 물지개 소리로 밝았다. ''삐걱빼걱 삐걱빼걱'' 빨리 걸러가면
그 소리도 빨라진다.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지만 수돗물을 먹었다. 그런데
집안에 수도가 있는 집은 없었던것 같다. 동네 어귀에 공동수도가 있었다.
공동수도는 주인이 있어서 한지게에 1전을 받고 팔았다. 그때 엿한 가래에
1전이었으니까 지금돈 100원과 맞먹는다"

아동전문학가 어효선이 그려놓은 것처럼 당시 공동수도 하나만 시설해
놓으면 세끼 밥걱정은 안해도 됐다.

그러나 얼마 되지않아 몰아닥친 6.25전쟁으로 수도시설이 파괴되자
"물난리"는 그뒤에도 여전히 심각했다.

92년 서울의 상수도보급률은 99.9%, 1일 1인당 급수량은 457l에 이르고
있으니 86년전 처음 수돗물이 나왔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그러나 지금 시민들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식수원인 한강의 오염으로 수돗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다고 아우성들이다.

서울시는 수돗물을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수돗물을
그냥 마신다는 시민은 2%정도라는 통계도 나왔다.

20세기초 영국이 공업화때문에 오염된 템즈강을 되살리는데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격언을 격려삼아 지금은 우리
모두가 서두르고는 있지만 아직 깨끗한 물만 찾아다닐뿐 더러워진 물을
깨끗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적은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