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칼] (576) 제3부 정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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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고의 뒤를 따라 이다가키다이스케와 고도쇼지로, 그리고 에도신페이,
소에지마다네오미등 정한파의 거물들이 모조리 사표를 내던지고 태정관을
떠났다.
그 이전에 이미 오쿠보를 비롯한 여러 반정한파 중신들이 막판 뒤집기
작전을 위한 계략으로서 집단 사표를 제출했었으니까, 태정관에 온통 사표
소동이 벌어진 셈이었다.
이와쿠라는 이제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터이라, 산조로부터 사무 인계를
받아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반정한파의 사표는 전부 반려를 했다.
그러나 사이고를 필두로 한 정한파의 사표는 천황의 재가를 받아서 정식
으로 수리를 하였다.
사표 소동은 태정관의 수뇌부에만 국한된게 아니었다.
정한론을 지지하고, 사이고를 따르는 사람들은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사표를 쓰고, 관복들을 벗어던졌다.
사이고가 도독으로 총지휘를 했던 근위군은 술렁거렸고, 그 막료인
기리노와 시노하라구니모도를 비롯한 많은 간부장교들이 사표를 냈다.
육군경(육군장관)인 야마가다아리도모는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부하 장교들을 불러 앉혀놓고,
"군인이란 모름지기 호국정신에 투철해서 국가를 보위하는 임무에만 충실
해야지, 공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본분을 저버리는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되오, 사표를 철회하기 바라오"
하고 노하며 만류를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군대보(육군차관)는 사이고다카모리의 친동생인 사이고쓰구미치였다.
야마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형의 뒤를 따라 그만둘 생각이오?"
뜻밖에 쓰구미치는,
"아닙니다. 나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형님은 형님의 신념대로 살고, 나는
내 신념대로 삽니다. 나는 군인의 본분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쓰구미치는 육군소장이었다.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할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장이며 사표를 내던진 기리노와 시노하라등 많은 동료들로
부터 형을 배반하는 자라고 비난을 산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군인들뿐 아니라, 경리(경찰)쪽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제발로 관직을 떠난 그들은 거의 모두가 뱃길 아니면 육로로 사이고의
뒤를 따라 가고시마를 향해 줄줄이 몰려갔다.
소에지마다네오미등 정한파의 거물들이 모조리 사표를 내던지고 태정관을
떠났다.
그 이전에 이미 오쿠보를 비롯한 여러 반정한파 중신들이 막판 뒤집기
작전을 위한 계략으로서 집단 사표를 제출했었으니까, 태정관에 온통 사표
소동이 벌어진 셈이었다.
이와쿠라는 이제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터이라, 산조로부터 사무 인계를
받아 자기가 보관하고 있던 반정한파의 사표는 전부 반려를 했다.
그러나 사이고를 필두로 한 정한파의 사표는 천황의 재가를 받아서 정식
으로 수리를 하였다.
사표 소동은 태정관의 수뇌부에만 국한된게 아니었다.
정한론을 지지하고, 사이고를 따르는 사람들은 직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사표를 쓰고, 관복들을 벗어던졌다.
사이고가 도독으로 총지휘를 했던 근위군은 술렁거렸고, 그 막료인
기리노와 시노하라구니모도를 비롯한 많은 간부장교들이 사표를 냈다.
육군경(육군장관)인 야마가다아리도모는 중립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사표를 제출한 부하 장교들을 불러 앉혀놓고,
"군인이란 모름지기 호국정신에 투철해서 국가를 보위하는 임무에만 충실
해야지, 공연히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본분을 저버리는 경거망동을 해서는
안되오, 사표를 철회하기 바라오"
하고 노하며 만류를 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육군대보(육군차관)는 사이고다카모리의 친동생인 사이고쓰구미치였다.
야마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형의 뒤를 따라 그만둘 생각이오?"
뜻밖에 쓰구미치는,
"아닙니다. 나는 그만두지 않습니다. 형님은 형님의 신념대로 살고, 나는
내 신념대로 삽니다. 나는 군인의 본분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쓰구미치는 육군소장이었다.
그 형에 그 동생이라고 할수 있는 당당함이었다.
그러나 같은 소장이며 사표를 내던진 기리노와 시노하라등 많은 동료들로
부터 형을 배반하는 자라고 비난을 산것은 말할 것도 없다.
군인들뿐 아니라, 경리(경찰)쪽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옷을
벗었다.
제발로 관직을 떠난 그들은 거의 모두가 뱃길 아니면 육로로 사이고의
뒤를 따라 가고시마를 향해 줄줄이 몰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