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있는 사람이 되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자. 꿈을 가진 사람이 되자"

기아자동차 전임원이 참가하는 주례경영회의는 구호제창으로 시작된다.
과거(신용)-현재(노력)-미래(꿈)로 이어지는 이구호를 제창하면서 기아
임원들은 누구나 노력하면 누구나 전문경영인의 꿈을 이룰수 있다는 점을
머리에 깊이 새긴다.

"기아인으로 시작해서 기아의 정상이 되자" 연수기간중 외쳐보는 구호
역시 최고경영자를 꿈으로 하고 있다.

오너와 2세의 틈바구니에서 눈치 살피기에 급급한 다른 기업과는 기아
임원들은 지향점 자체가 다르다. 오너없이 모두가 한시적인 책임을 맡는
탓에 다른 기업보다 책임의 압박이 강하지만 회사에 대한 애착은 어느
곳보다 진하다.

그러나 지난12년간 전문경영인체제를 유지해오는데는 그만큼 어려움이
많았다. 김선홍회장의 이야기.

"하루는 은행엘 갔습니다. "전문경영인,아니 당신은 주식도 없고 자산도
없는 사람이 돈을 얻으러 왔느냐, 뭘보고 돈을 줘요."

그멸시하는 언행과 태도, 그걸 저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눈에서 불이
튀어나왔습니다. "너는?"그러고 싶었지만 "그러면 이은행이 행장님
것입니까"라고 말했지요. 그뒤 거래가 이루어진 것을 나는 기억합니다"
회장만이 아니다.

동아자동차와의 합병조치를 막기위해 정부 국보위등을 뛰어다닌 지금의
주요임원들은 그때 자신들의 세련되지 못한 모습을 떠올리면서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그러다보니 기업자체가 방어본능이 강하다.

삼성의 승용차시장진출을 막기 위한 움직임도 본능에 가깝다. 특히
전문경영인체제에 장애요소가 등장할 경우에는 지나칠 정도의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우리사회가 이론적으로는 소유분산을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문경영인체제를 끌고 나가기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 기아임원들의
불만이다.

기아의 임원들은 특별한 맥을 갖고 있지 않다. 김회장이 "보통사람들이
모여 최고를 지향한다"고 말하듯이 KS도 거의 없다. 다만 다른 기업과는
달리 외부영입 케이스가 많은 것이 눈에 띤다.

이범창부회장이 제일은행에서 영입된 것을 비롯해,수출본부장인 김승안
전무와 기술연구소 파워트레인개발담당 이재일전무는 삼성그룹출신이다.

수출관리실장 정태승상무는 상공부에서 건너왔다. 임원중 9명이 영입
인사이다.

기아임원들은 부지런하다. 어느 기업이나 부지런하지 않은 임원이
배겨날수 없겠지만 재계총수중 가장 공장방문이 잦은 김회장 탓인지
책상에 편하게 앉아 있는 임원들은 거의 없다.

아산만공장 건설자금동원을 맡아 사장까지 역임한 이부회장도 금융통답지
않게 요즘은 공장에서 산다. 이러한 분위기는 공장장들로 그대로 이어진다.

소하리공장장 김광순전무,아산만1공장장 조병창전무등은 아예 책상을
두지 않고 공장근로자들과 부대끼면서 산다.

특히 김전무는 아시아자동차의 생산체제를 안정시킨 공신으로 기아자동차
로 넘어와서도 공장청소때 대형프레스위에 가장 먼저올라갈 정도로
솔선수범형이다.

김회장과 한승준사장을 보좌하는 3명의 부사장도 부지런하기는 마찬가지
이다. 기획조정실장으로 이번 조직개편을 주관한 박제혁부사장은 항상
감기에 걸려있다. 일에 미쳐 몸관리를 제대로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기는 호기이다"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 그는 기획부장이던 82년 기아
최대위기에 회사재건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회생의 주역이다.

2.28자동차산업합리화 조치로 기아자동차가 5년간 승용차사업을 못하게
됐는데도 메이플프로젝트라는 승용차사업계획을 작성,5년뒤 프라이드로
기아가 승용차시장에 성공적으로 다시 등장할 수 있도록 했을 정도로 그의
시각은 예리하다.

이번 조직개편으로 제조총감독의 중책을 맡은 김영귀부사장은 제조부문에
원가절감의 개념을 도입했다.

국내업계 처음으로 만들어진 CC(코스트 콘트롤)실을 처음 맡았던 그는
RCD-22라는 원가절감운동의 주역으로 5백여억원의 누적적자를 단숨에
흑자기업으로 전환시키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기호부사장은 기아입사이래 줄곧 자금을 담당해 어려운 시기를
넘기는데 누구보다 많은 고생을 했다. 현재 그룹종합조정실장으로
나서지 않고 필요한 때 적절히 후배들을 지원해주는 스타일이다.

이밖에 사원회사인 기산으로 자리를 옮겨 중국등 해외진출및 아산만
제2공장 건설을 위해 뛰어다니는 이신행사장의 그림자가 기아자동차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