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코케미컬사는 지난 92년8월 유공과 합작한 유공아코화학의 지분 50%
(4백억원)를 포기하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동남아생산기지확보를 노리고 공장을 가동한지 1년8개월만이었다.

가동 첫해에만 무려5백억원의 적자를 낸 사업을 미련없이 정리한 것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느니 차라리 포기하는쪽으로 일찌감치 마음을 고쳐
먹은셈이다.

유공이 이같은 사연으로 넘겨받은 유공옥시케미컬(92년10월에 상호개명)이
되살아나고 있다.

올해에는 잘하면 손익이 균형을 되찾을수도 있을것 같다.

92년에 2백49억원에 이르렀던 적자가 지난해 20억원으로 줄어든데 이어
3년만에 정상을 회복하고 있는 것이다.

아코측은 요즘 중국등 동남아에 공급할PO(산화프로필렌)를 더 달라며
거꾸로 유공에 매달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공측에 유리한 상황으로 반전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같은 상황이 일어날수 있었을까.

미국이 포기한 회사를 유공이 조기에 정상궤도로 올려놓을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한국은 가격경쟁에서 미국 중동등 산유국을 따라잡는데 구조적으로 한계가
있다.

우선 가격경쟁력을 보자.

원료쪽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산유국인 미국과 중동에 비해 원료를 비싸게 조달할밖에 없다.

원료생산에 드는 용역비(유틸리티비용)또한 산유국보다 비싸다.

따라서 변동비측면에서 일본과는 별차이가 없다손 치더라도 미국 중동에는
뒤진다.

고정비쪽도 불리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투자가 자유화된 지난90년이후에 대규모 집중투자가 이루어진 관계로
감가상각부담이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t당 88.9달러로 제조원가의 22.3%에 이르고 있다.

아시아최대경쟁상대인 일본에 비해 고정비부담이 오히려 큰 형편이다.

품질과 서비스등 비가격부문에서도 경쟁력이 뒤진다.

폴리올레핀품목수로 볼때 한국은 4백50종으로 일본(9천5백종) 미국(7백
50종) 유럽(1천1백50종)에 크게 뒤진다.

기술서비스 클레임처리 제품판매지원등 서비스측면에서도 일본에 떨어진다
는 평가를 받는다.

가격.비가격경쟁에서 이처럼 열세인 한국이 어떻게 동남아수출시장에서
일본을 누르고 "무서운 아이"로 등장할수 있는가.

일견 무모한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엄청난 투자능력을 꼽을수 있다.

대기업그룹의 주력계열사로 경영이 정상화될때까지 엄청난 자금을 지원
받을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석유화학은 엄청난 투자를 필요로하는 대표적인 장치산업이다.

그런만큼 금융부담이 클수밖에 없다.

공장건설후 초기 5년동안은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자금동원능력이 사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점에서 한국은 다른 어떤나라보다 앞서 있다.

"언젠가 한번" 다가올 호기를 노리기 위해 무리랄 정도로 돈을 댈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투자자유화이후 이 부분은 이미 검증됐다.

새로 유화사업에 참여한 현대 삼성이 각각 1조5천억원을 투자하는등
3년여동안에 5조원이상을 유화쪽에 쏟아부었다.

선진국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러나 미국 일본등은 우리와 사정이 크게 다르다.

미국은 전체지분의 25% 이상을 갖고 있는 해외투자기업의 영업실적을 연결
재무제표에 반영시킨다.

단기실적에 따라 주가가 바로 영향을 받는다.

3~4년동안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할 여력이 없다.

아코사가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한국을 떠날수 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도 원가에 크게 밑지고는 제품을 팔지 않는다.

손실을 보면서 굳이 공장을 가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지난3년여동안 바닥으로 떨어진 동남아시장의 주도권을 한국에 내준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국내업계는 장치산업의 특성을 살릴수 있는 집중적인 투자능력을 십분
활용, 석유화학산업을 세계5위수준으로 끌어올릴수 있었던 것이다.

<김경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