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중 에이즈에 감염된 환자에 대한 법원의 배상판결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환자들에게 또다른 절망감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수혈에이즈 환자와 가족들이 국가와 대한적십자, 병원등을 상대로
2건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이 사실상 환자의 패소나 다름없는
판결을 내리고 있어 그나마 금전적인 배상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서울민사지법 합의12부(재판장 심명수 부장판사)는 16일 수혈받고 에이즈에
감염된 주부 안모씨(49)등 가족 6명이 국가, 대한적십자, 고려중앙학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만 원고들에게
위자료 2천9백만원을 지급하라"며 사실상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원고들은 수혈로 인해 억울하게 에이즈에 감염돼 죽음이 예견되고 있고 가
족들도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7억원을 배상하라고 주장
했으나 수혈책임을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겨우 위자료만 인정받은 것이다.

"국가등 피고들은 혈액의 에이즈감염여부에 대해서 현행 기술로 검사를 다
했고, 에이즈바이러스항체가 수혈시에도 나타나지 않아 발견하지 못했기 때
문에 과실을 범했다고 볼 수 없다"는게 재판부의 설명.
재판부는 그러나 "수혈로 인한 에이즈감염이 보편화돼 있는데도 병원이 환
자에게 수혈의 위험성과 부작용등을 일러주지 않는등 설명의무를 지키지 않
았다"며 위자료지급 책임만 인정, 궁색한 금전적 배상판결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12월 수혈로 에이즈에 감염된 뒤 비관자살한 이모군(당시 21세)의
유족들이 역시 국가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도 "국가와 병원측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내용의 사실상 원고패소판결이 내려졌다.

그러나 당시 담당재판부인 서울민사지법 합의15부(재판장 김목민부장판사)
는 "대한적십자사는 채혈과정에서 혈액의 안전성을 확보해야 할 의무가 있
다"며 "적십자사에게 1천2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었다.

결국 이 두 재판부는 위자료지급과 채혈의 책임소재에 대해 서로 엇갈린
판결을 내린 셈이다.

이와관련 한 변호사는 "비록 대한적십자등 혈액공급자들이 감염여부를 검
사하는등 최선을 다했더라도 수혈로 인해 환자가 에이즈에 감염됐다면 배상
책임을 지우는 것이 사법적극주의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고기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