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칸느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데다 세계최초로 국내에서 개봉됐다
해 화제를 모은 "펄프픽션"은 감상이 만만치 않은 영화다.

보는 이의 기대수준에 따라 이 영화는 극에서 극으로 이르는 평가를
받을수도 있다.

영화 역시 문학작품처럼 뚜렷한 서사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펄프 픽션"은 단지 "삼류작품"에 불과할 뿐이다.

시종 종잡을 수 없는 스토리 전개와 쉽게 와닿지 않는 미국식 대사들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없다"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반면에 뭔가 참신하고 실험적인 것을 찾는 이에게는 단연 눈길을 끌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갖고 있다.

전자들을 당혹케 했던 복잡한 구도와 특이한 상황설정이 후자들에게는
매력포인트로 다가갈 수 있다.

배경은 LA 암흑가. 감독 켄틴 타란티노가 영화속에서 창조해 낸 인물들의
개성은 무척 선명하다.

마피아 보스 마르셀러스(빙 레임스)의 출중한 심복 줄스(사무엘 엘 잭슨)
는 사람을 죽이기 전 "의인의 길은 여호아가 예비하시니....."로 시작되는
구약성경 "에스겔서"의 한구절을 꼭 읊어대는 인물이다.

마피아 두목과의 계약위반으로 쫓기는 프로복서수 버치(브루스 윌리스)는
또 어떤가.

그는 낡아빠진 시계 하나를 흡사 부적처럼 여긴다.

할아버지가 차기 시작한 이 시계는 전쟁포로가 된 아버지와 아버지
친구가 항문에 감춰가며 그에게 전달된 것.

여기에 마약중독자인 보스의 정부 미아(우마 터먼),시체처리엔 두번째
가라면 서러워하는 일가견을 지닌 해결사 울프(하비 카이텔)등의 가세로
개성파들이 득시글대는 하나의 "난장판"을 만들어낸다.

영화의 전개는 "자기 꼬리를 무는 뱀의 그림"처럼 얽혀 있다.

한탕하고난 줄스와 그의 동료 빈센트(존 트라볼타)가 아침을 먹고 있던
식당에서 풋내기 좀도둑 커플에 의해 강도사건이 일어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그러나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신이기도 하다.

이 두 신 사이를 메워가는 일련의 상황들이 영화의 줄거리라면 줄거리다.

빈센트와 미아의 시선속에 번쩍이는 에로틱한 스파크,싱크대위에 총을
놓고 화장실에 일보러 갔다가 빈센트에게 끝장난 빈센트의 방심,
동성연애자들에 잡혀 혼줄이 난 버치와 마르셀러스의 해프닝등이 별반
연관성없이 이어진다.

"펄프픽션"은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면모를 가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 관객들에게 어필할수 없는 것은 그 난해함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문학작품으로서의 영화"라는 기대감을
저버려서 인지는 좀더 생각해 볼 일이다.

(중앙극장, 씨네하우스 상영중)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