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뉴욕에서 연극연출을 공부한 2명의 연극인이 가을무대에 눈에 띄는
실험극 2편을 동시에 올려 주목을 끌고 있다.

연우무대에서 "사팔뜨기 선문답-난 나를 모르는데 왜 넌 너를 아니"를
공연하는 윤영선씨와 연극실험실 혜화동일번지에서 "텔레비전"을 공연하는
황두진씨가 화제의 인물.

윤영선씨는 뉴욕주립대학에서 연극학, 황두진씨는 뉴욕시립대학에서 연극
연출을 각각 전공했다.

두 사람은 뉴욕에서 미국이민사회를 다룬 "아메리카 저메리카"를 함께
공연하기도 한 사이.

이 작품에서 황두진씨는 연출, 윤영선씨는 배우로 출연했다.

공교롭게도 이 두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바로 옆에 위치한 두 극장에서
각각 창작실험극과 미국 오프오프 브로드웨이계열의 실험극을 공연해 연극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것.

10월9일까지 연우소극장(744-7090)에서 공연되는 "사팔뜨기 선문답"은
윤영선씨가 직접 구성한 창작극.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몸짓과 소리등을 이용한 이미지전달 중심의 연극
이다.

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탐구한 보고서라 할수 있는데 작가는 목소리만
나오고 여섯명의 작가분신들만이 등장해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심리상태를
재현한다.

극속의 작가는 어린시절 미친여자의 자살을 본데 이어 민주화과정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

미친여자의 죽음은 명분없고 무의미하고 동료의 죽음은 숭고하다고 생각
했던 자신의 기준이 광인이나 사회의 힘없는 자들을 소외시키는 또다른
잣대로 작용하지 않았는가 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반성이 나타난다.

또 동료의 죽음을 글로 발표해 유명해진 자신은 결국 친구를 팔아먹고
상품화시켜서 살아가는 일종의 식인종이 아닌가 하는 자책이 작품의 중심을
이룬다.

윤영선씨는 "개인의 잠재의식속에 심어진 우리현대사에 대한 뒤틀린
이미지들을 섬세하고 구체적인 신체언어로 표현하려 했다"며 "극에 여백을
남겨 관객이 개입할 여지를 많이 남겨 놓았다"고 전한다.

10월31일까지 혜화동일번지(763-6238)무대에 올려지는 "텔레비전"은
미국에서 활동중인 장 클로드 반 이탤리의 작품.

30년전 뉴욕에서 초연된 작품인 만큼 서울의 현실에 맞게 황두진씨와
배우들이 토론을 거쳐 많은 부분을 개작해서 무대에 올렸다.

전체무대는 TV화면과 모니터실로 나눠져 한쪽에서는 배우들이 뉴스 광고
드라마등 TV프로그램을 진행시키고 다른 한쪽에서는 모니터실 직원들이
방송을 보며 크고 작은 사건들을 일으킨다.

작품의 마지막에는 서로의 삶이 바뀌어 TV속의 인물이 모니터실로 나오고
모니터실의 인물들은 화면속에 들어가 TV에 의해 규격화된 인물로 변한다.

황두진씨는 "텔레비전 광고와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이 개성을 잃고 상품
처럼 사고 팔리는 과정을 통해 현대인의 소외감과 단절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 권성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