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0년 10월 동서독이 통합됐을때 어느 누구도 동독 경제가 ''썩은
고물''인 줄은 예측하지 못했다.

동독경제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채 구동독 공산정권이 제시한
경제력만 믿고 통독을 추진한 콜정부는 ''독일처럼 통일하지 말자''는 안팎의
거센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구동독의 경제수준과 살림규모를 잘못 판단한탓에 서독 국민들이 떠맡아야
할 통일 비용은 천문학적 숫자로 불어났고 이는 결국 잘못된 통일이라는
불신을 초래했다.

그러나 침몰할 것으로만 알았던 통독경제는 엘베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동독경제의 기사회생으로 ''자유와 번영이 약속된 대독일의 꿈''을 현실로
맞이하고 있다.

체제의 차이와 경제력 격차 등으로 상당기간 후유증을 겪을 것으로 알았던
동독경제는 오히려 통일독일의 경제기적을 이끌어 가는 견인차 역할을 해
내고 있는 것이다.

골칫덩이인줄로만 알았던 동독은 오늘날 중국 동남아와 함께 세계에서
경제개발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로 부상했고
서유럽과 동유럽의 전략적 요충지라는 장점 때문에 외국기업 투자 또한
러시를 이루고 있다.

황폐화되다 시피했던 공단지역에는 최첨단 시설을 갖춘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고 구동독 전역에 걸쳐 철도의 현대화와 기존 도로망 확장공사
가 한창이다.

동독 튜링기아주 아이제나흐시에 세워진 오펠 승용차 공장은 세계 최첨단
시설을 갖춘 유럽굴지의 공장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독일 최대 전자업체인 지멘스사가 드레스덴에 추진중인 17억달러 규모의
실리콘 칩 공장 역시 세계최첨단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뜻하지 않던 서독 자본 유입으로 신바람이 난 동독 조선산업은 유럽내
에서 가장 효율성이 높은 산업 가운데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수치상으로 나타난 동독의 성장 드라마는 통독 경제재건에 참여하고 있는
서독관계자들도 놀랄 정도다.

지난해 동독의 경제성장률은 7%였다.

올상반기 성장률은 이보다 1.9%포인트 높은 8.9%.

올해 전체적으로는 9% 성장도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비관적이기만 했던 산업생산 역시 급속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90년이후 92년까지 50% 가까운 감소율을 보였던 산업생산은 지난해
부터 오름세로 돌아서 93년의 경우 9%라는 고무적 증가율을 보였다.

통일 이후 한때 17-18%선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안정을 찾고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중 동독의 실업률은 14.8%로 전달에
비해 0.6%포인트 줄어들었다.

그러나 동독의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경쟁력 갖추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무엇보다도 경제재건을 위해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고 공산주의체제에
안주해온 동독 근로자들을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재교육이 요구됐다.

낙후된 사회간접자본 시설 정비 또한 시급한 과제였다.

독일인들은 그러나 성급한 통일이 불러온 이러한 낙관들을 지혜롭게
극복했다.

독일은 우선 동독 지역의 경제수준을 서독 수준으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동독의 낙후된 직업훈련및 교육체계를 서독과 똑같은 형태와 체계로 바꾸는
일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독일 연방정부는 통독후 새로 편입된 동독의 5개주에 공동
훈련원을 설치했다.

생산성과 자본축적이 낮은 동독기업 스스로는 직업훈련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한데다 직업훈련을 한다고해도 그 질적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직업훈련과 함께 독일은 동독의 사회간접자본 시설 정비에 박차를 가했다.

통일직후 동독의 이러한 사회간접자본 정비는 주로 통신망 분야에 집중
됐다.

통일 당시 동독의 사회간접자본 시설은 확실히 서독보다 뒤처졌었으나
이는 주로 기술수준이 낮은 통신망에 해당되는 것이었지 철도나 도로망에
있어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독일경제연구소에 따르면 통독 당시 철도나 도로의 연장거리로 볼때 동독
지역의 교통망은 서독지역에 비해 그다지 뒤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통신망에 있어서는 동서독간 차이가 뚜렷했다.

통일전인 지난 89년 인구1백명당 전화기 보유대수는 서독이 47대인 반면
동독은 11대에 불과했다.

당시 팩시밀리 보유대수는 서독이 50만대 동독이 2천5백대였다.

이에따라 독일은 동독지역 전화가설을 위해 91년에 약67억마르크, 92년과
93년에는 각각 1백10억마르크를 투자했다.

그결과 동독 지역의 전화기 보유대수는 91년 2백40만대에서 93년에는 4백
10만대로 늘어났다.

독일정부는 그러나 통신망 정비가 시급하다고 해서 교통망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동독의 철도 연장거리는 짧지 않았지만 시설이 낙후된 관계로 개보수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동독지역 철도에 대한 투자는 91년 53억마르크에서 93년 76억마르크로
피크를 이룬후 올해엔 37억마르크에 달할 전망이다.

동독 지역 고속도로와 국도에 대한 투자액 역시 91년 19억마르크, 92년
35억마르크, 93년 34억마르크에서 94년에는 42억마르크(예상치) 등으로
꾸준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통일 독일을 이끌고 나갈 견인차의 미래가 착착 다져지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동독지역의 사회간접 자본시설확충이 마무리될 경우 통독경제
는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병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