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기계는 섬유도시 대구의 자존심을 과시하듯 최근 급성장 하는
섬유기계전문메이커다.

섬유기계중 준비기인 연사기만 28년째 만들어오고 있는 외곬회사다.

국내최대의 섬유기계 메이커로서 국내 7천대 연사기시장에서 60%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종업원 2백97명의 대원은 올해 1천3백억원의 매출달성이 무난할
것으로 보고있다.

93년엔 6백78억원의 매출을 기록,전년보다 1백10% 성장했다.

작년 무역의날에는 1천만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지난 91년이후 연평균 1백% 신장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회사측은
밝힌다.

이같은 매출급증은 우연이 아니다.

직물 고부가가치화 추세에 따라 실꼬는 기계인 연사기 수요가 느는
것이 이유의 하나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연사기의 국산화및 고성능화에 있다.

분임조 활동등을 통한 직원들의 헌신적인 생산증대노력도 성장에
큰힘이 됐다.

한세대동안 한우물만 파온 자연스런 결과인 것이다.

장용현사장(57)이 지난67년 창업당시 세운 "세계제일의 연사기를
만든다"는 목표를 거의 실현한 셈이다.

77년 이탈리아형 연사기개발에 이어 86년 연사기의 혁명으로 불리는
투포원(이중꼬임)연사기를 최초로 국산화,국내시장을 장악하던 일본산
연사기를 축출했다.

3억원을 들여 개발한 투포원연사기 덕택에 생산성은 그전보다 3배
향상됐고 직물도 훨씬 고급화됐다.

대원의 국산화로 연간 2억6천만달러의 수입대체효과도 거두고 있다.

이회사는 투포원연사기를 개발한 공로로 92년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회사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만은 아니다.

지난 79년에는 소위 흑자도산을 맞는 불행도 겪었다.

당시 중국특수를 예상하고 설비증설을 통해 연사기생산에 박차를
가하던중 중동전에 따른 석유파동여파로 자금난을 겪다 도산한 것이다.

종업원과 납품업자들의 구사운동으로 3년만에 기업을 정상화한 것이
오히려기업체질 강화의 계기가 됐다.

그후 83년 연사기 생산설비중 구형선반을 CNC(컴퓨터수치제어)선반으로
교체하고 90년 CAD(컴퓨터지원생산)시스템을 도입하는등 과감한 투자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아직도 대원은 중요한 과제를 안고있다.

투포원연사기의 1백% 국산화이다.

장회장은 "마무리공정을 중점연구해 현재 95%인 국산화율을 96년에는
완벽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이를위해 15억원을 들여 대구 중리동 제2공장내에 3백평규모의
섬유기계종합연구소를 올11월 완공,기술첨단화에 주력키로 했다.

연구소에 30명의 고급기술인력을 배치,일본 무라다및 독일 ICBT
연사기를 능가하는 신기종을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일부 생산중인 펀와인더 점보와인더등 준비기계의 고품질화도 이루기로
했다.

수출증대를 위해 인도네시아 주력에서 중국 베트남등지로 거래선을
다변화하고 북경내 판매법인 설립도 추진중이다.

올해 1천5백만달러 내년 2천만달러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려 해외에도
"연사기는 곧 대원"이란 인식을 심겠다는것이 임직원들의 각오다.

대원기계가 첨단 연사기 개발에 주력,국내외 시장에서 국산의 점유율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설립일=67년9월5일 <>공장소재지=대구시 서구 이현동 <>생산품목=연사기
펀와인더 점보와인더 <>종업원=297명 <>자본금=5억5천만원 <>매출액(94년계
획)=1천3백억원 <>해외법인=인도네시아 반둥시

< 문병환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