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김영기 <돌핀산업 대표>..'큰빛 남성코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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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봐도 답답해. 술 마셔도 답답해. 일을 해도 답답해..."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뮤지컬영화 "남태평양(South Pacific)"의 영화
음악 "여자보다 귀한것 없네(There Is Nathin Like A Dame)"라는 노랫말의
일부로서 답답한 사내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함 그 자체인것 같다.
어디 한여름의 냉수와 같은 시원한 것이 없을까?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어느 겨울아침,어머니의 인도로 온가족이 가정예배를 막 시작하려던 차에
갑자기 누나와 형이 한판 결투를 벌이고 말았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뜯어 말리시다가 지쳐 방바닥에 주저앉고 마셨다.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하셨을까?"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나는 눈치만 살필 따름이었다.
그런데 잠시후 어머니는 찬송을 힘없이 부르기 시작하셨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어느덧 두줄기의 눈물이 어머니의 뺨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어머니는 마침내 흐느껴 울고 마셨다.
이날 아침 우리모두는 어머니 앞에 마주 앉아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모두를 맑고 기쁜 마음으로 변화시킨 직후 당신의
모습도 다시 기쁨이 충만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체험한 찬송의 힘이었다.
나는 나이 50이 넘어선 지금까지 이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답답할 때마다
어머니를 회상하며 찬송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다.
그후 대광중.고등학교 시절에 찬송과 음악을 배우고 지난 30여년간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체험하여 알게된 "찬양"을 통해 더욱 많은 기쁨을
얻고 있다.
"큰빛 남성코랄"은 이러한 나의 감정을 더욱 들뜨게 하고 있다.
"큰빛 남성코랄"은 음악을 사랑하는 대광고등학교 출신 동문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나는 테너파트의 단원으로서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어떠한 약속도 배제하고
연습에 참가하고 있다.
모든 단원들도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열심히 연습에 임해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다.
단원중에는 음악을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직 교수.교사.오페라가수등도 많이 있다.
또 매년 새로운 동문들이 탄생할 때마다 신입단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동문"과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30여년의 연령차리를 극복하고
이뤄내는 하모니는 나의 삶의 잔잔한 기쁨이 되고있다.
그러기에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원으로서
한없는 자부심에 묻혀 살고있다.
오는 29일에는 국립극장에서 제2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게 되어 더욱 맘이
설레이고 "큰빛 남성코랄"의 연주가 대광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많은 음악
동호인들의 잔치가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답답한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지난 여름의 냉수와 같은
시원함과 기쁨이 주어지는 기회가 되어지길 기도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3일자).
이 구절은 우리가 잘 아는 뮤지컬영화 "남태평양(South Pacific)"의 영화
음악 "여자보다 귀한것 없네(There Is Nathin Like A Dame)"라는 노랫말의
일부로서 답답한 사내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사회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답답함 그 자체인것 같다.
어디 한여름의 냉수와 같은 시원한 것이 없을까?
국민학교 5학년때의 일이다.
어느 겨울아침,어머니의 인도로 온가족이 가정예배를 막 시작하려던 차에
갑자기 누나와 형이 한판 결투를 벌이고 말았다.
어머니는 한참동안 뜯어 말리시다가 지쳐 방바닥에 주저앉고 마셨다.
"얼마나 속상하고 답답하셨을까?"
아무것도 할수 없었던 나는 눈치만 살필 따름이었다.
그런데 잠시후 어머니는 찬송을 힘없이 부르기 시작하셨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말 들으사..."
어느덧 두줄기의 눈물이 어머니의 뺨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어머니는 마침내 흐느껴 울고 마셨다.
이날 아침 우리모두는 어머니 앞에 마주 앉아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빌었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모두를 맑고 기쁜 마음으로 변화시킨 직후 당신의
모습도 다시 기쁨이 충만한 상태로 변해 있었다.
이것은 내가 처음으로 체험한 찬송의 힘이었다.
나는 나이 50이 넘어선 지금까지 이때의 감정을 잊지 않고 답답할 때마다
어머니를 회상하며 찬송을 통해 용기를 얻고 있다.
그후 대광중.고등학교 시절에 찬송과 음악을 배우고 지난 30여년간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체험하여 알게된 "찬양"을 통해 더욱 많은 기쁨을
얻고 있다.
"큰빛 남성코랄"은 이러한 나의 감정을 더욱 들뜨게 하고 있다.
"큰빛 남성코랄"은 음악을 사랑하는 대광고등학교 출신 동문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이다.
나는 테너파트의 단원으로서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어떠한 약속도 배제하고
연습에 참가하고 있다.
모든 단원들도 각자의 생업에 충실하면서도 열심히 연습에 임해주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다.
단원중에는 음악을 전공하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직 교수.교사.오페라가수등도 많이 있다.
또 매년 새로운 동문들이 탄생할 때마다 신입단원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동문"과 "음악"이라는 매개를 통해 30여년의 연령차리를 극복하고
이뤄내는 하모니는 나의 삶의 잔잔한 기쁨이 되고있다.
그러기에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순수 아마추어 합창단원으로서
한없는 자부심에 묻혀 살고있다.
오는 29일에는 국립극장에서 제2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게 되어 더욱 맘이
설레이고 "큰빛 남성코랄"의 연주가 대광인들만의 행사가 아니라 많은 음악
동호인들의 잔치가 되어주기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답답한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지난 여름의 냉수와 같은
시원함과 기쁨이 주어지는 기회가 되어지길 기도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