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 부정척결 차원에서 금융실명제의 비밀보장 장치를 완화키로
한뒤 23일 첫"실무대책반 회의"가 열려 보완형식과 폭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날회의에선 실명제 긴급명령을 그대로 고치거나 대체입법을 하는
방안은 고려하지 않고 감사원법이나 공직자윤리법등 다른 법률을
보완해 실명제 긴급명령을 피해가도록 하는 방향으로 추진키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서 재무부는 가능한 방법으로 <>긴급명령 자체의 개정
<>법으로대체입법하면서 내용수정 <>긴급명령 시행령 개정 <>감사원법
공직자윤리법 형사소송법등 타법보완의 4가지를 제시했다.

그러나 절차로나 명분으로나 다른 률을 개정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이라는
주장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우선 대통령이 발동한 긴급명령을 개정하려면 또다시 긴급명령으로
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게 재무부의 판단이다.

긴급명령은 "재정경제상 위기에 처했을 때" 발동할 수 있게 돼있어
현행 긴급명령도 위헌이라는 주장이 없지않은 판국에 부분적인 보완을
이유로 또다시 긴급명령을 발동할 수있겠느냐는 이유에서다.

법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재무부의 일관된 주장이다.

법을 만들다 보면 틀림없이 비실명자산에 대한 과징금비율이라든지
실명확인 대상,자금출처 조사의 범위등 실명제의 본질을 놓고 원점으로
되돌아가 치열한 논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초기의 불안국면이 재연될수 밖에 없다는 게 재무부의
걱정이다.

재무부는 이날 회의에 참석한 다른 기관에서도 긴급명령 자체를 개정
하거나 대체입법하자는 주장은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비밀보장 관련제도를 손질하더라도 긴급명령의 골격을 흐트려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이밖에 시행령을 개정하는 것은 어렵진 않지만 사정기관에서 요구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엔 미흡하다는 게 이날회의의 중론이었다고 한다.

시행령에는 정보제공을 요구할 경우 요구서 작성방식,제공정보의
사후관리등을 규정하고 있는 정도여서 정보요구에 대한 규제자체를
완화해야 한다는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시행령 개정은 다른 조치와 병행하는 작업으로 추진키로 했다.

결국 남는 길은 다른 법을 보완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견해가
모아졌다.

현행 긴급명령에선 영장이 있더라도 금융기관의 점포별로만 자료를
요구할 수있도록 하고 있으나 공직자에 대한 사정이나 수사에 필요할
경우엔 금융기관에 포괄적으로 특정인의 거래정보를 요구할 수 있도록
관련조항을 만들어 넣자는 것이다.

긴급명령보다 나중에 조항을 만들면 신법우선의 원칙에 따라 그조항이
적용되기 때문에 긴급명령을 피해갈수 있다는 얘기다.

재무부는 최근에 만든 선거부정방지법도 같은 방식으로 포괄요구가
가능토록 한 것을 예로 들었다.

문제는 금융권에 미칠 파장이다.

실명제긴급명령을 직접적으로 건드리지 않더라도 어차피 비밀보장 규정은
완화되게 돼있고 그만큼 비밀보호에 대한 당초의 취지가 퇴색될수 밖에
없는 탓이다.

금융거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 자칫하면 금융거래를 위축시키거나
고액예금들이 제도금융권을 이탈하는 부작용을 몰고올수 있다는 우려다.

어렵사리 다져가고 있는 실명거래관행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예상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사후관리 강화방안은 재무부가 마련키로
했지만 "비밀보호 보다 사정이 우선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정만호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