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쉰되는 동안에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몇몇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고
그런 모임중에 북문연이란것이 있다.

북한문제나 북방문제 연구쯤이 어울릴것 같은 이름이지만 실은 주말보다
북한산을 찾는 친구 몇이상 그냥 어울리는 모임이다.

현재 자주 보는 얼굴 대다수가 경북대 사대 부속고 12회동기들이지만
특별한 가입제한은 없어 경북고를 졸업한 배국제회원도 자주 만난다.

그저 알만한 친구가 별볼일 없는 일요일 아침이면 6시 반쯤께 구기터널
입구 주차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된다.

셈터에서 깔딱고개에서, 그리고 문수사에서 숨울 돌리고는 대남문까지
간다.

경북 산골출신이 많은 우리에겐 산행이란 그저 예사로운 생활의 일부요,
편안함이다.

이 편안함 속에서 함께 어울려 배낭속에 지고온 아침식사를 즐기고, 시종
이어지는 웃음을 즐긴다.

안개가 채 가시지도 않은 산상에서의 진수성찬 조찬회!

한일합섬에 다니는 이명기회장은 새벽 3시부터 준비했다며 삶은 감자,
계란에 두부를 풀어놓고 은행감독원 이영무회원의 부인이신 한도안성부회장
은 삶은 오징어, 도토리묵에, 겨울엔 따끈한 호박죽까지 준비해온다.

신일조명의 이동건회원은 지난주 골뱅이 무침을 가져와 우리의 입맛을
돋구었다.

친구들 골고루 챙겨 먹이는데는 라이프 유통의 김일두회원도 알아줘야
한다.

음식맛에 취하고, 장만한 정성에 취하고, 무거운 것 마다 않고 지고온
정에 취하는 사이 모두 30여년전 학생시절 되돌아가고 우리의 웃음 꽃도
절정을 이룬다.

턱없이 큰소리로 웃기는 건 한림창업투자의 정삼수회원 몫이고, 툭탁거리고
아픈데 꼬집고, 약점잡아 놀리는건 이회장이 전공.

입만가지고와 다른이의 먹는 즐거움에 조금도 기여하지 못하는 필자는
큰소리로 웃는것 담당이다.

김홍주회원과 함께.

그래서 맑고 밝은 웃음소리 속에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텅빈 것처럼
가벼워진다.

빈 배낭 챙겨멘 하산길.

발길은 오를때 보다 더 더디다.

쉬어가며, 노닥거려 가며, 또 사진도 찍어가며.

자기 불참중 쿠데타적 사건으로 회장자리 빼앗겼다고 지금도 현회장단에
불만이 있는 듯한 송무광 전회장은 우리를 모델로 하는 유명한 사진작가
이다.

먹고 웃고하며 몸과 마음을 살찌우는 것 외에도 우리의 자랑은 또 있다.

누군가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며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쉽게 푸는 방법을
우린 연구해 내고 만다.

꼭 자기 일처럼 그래서 우리회 이름도 북문연 아닌가.

산행후 헤어지는 마음은 언제나 아쉽다.

그러나 다음 주말 다시 북한산 자락에서 자연의 넉넉함을 배우고 동심의
순수함을 되찾고 또 훈훈한 정을 나누게 되길 기약하며 세상으로 나온다.

산행에서 닦여진 몸과 마음으로 각자의 건강하고, 건전한 삶을 위해서, 또
북한산에서 답을 얻지 못한 문제가 있다면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