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해석은 다양한 시각에 따라 여러가지로 제시되고 그것은 항상 수정을
받아야할 운명을 지니고 있다.

따지고보면 "역사는 창조된다"는 말도 그래서 생겨났다.

그러나 "역사창조"란 타당성있는 증거와 강력한 설득력에 의해 이루어진
재해석이란 전재아래서만 가능한 것이지 결코 사실을 왜곡 과장 미화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수사관이 증거물을 무시하고 범행 그자체를 은폐하거나 변조해서는
안되는 것과같다.

흔히 전체주의 국가나 독재정권의 위정자들은 민족감정을 지배하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역사를 미화 과장하지만 이것은 역사를
빙자한 기만행위에 불과하다.

지난해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평양시 강동군문흥리 대박산 동남쪽
기슭에 있는 "단군릉"에서 모두 86개의 사람뼈를 수습,연대를 측정한
결과 5011년전의 것이었다는 발굴보고서를 발표했다.

"단군이 고조선을 창건하고 도듭한 평양이 산수 수려한 곳으로서
검은 모루유적의 주인공과 "역포사람"(고인)"만달사람"(신인)"조선
옛조류형사람"으로 이어지는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우리민족의
발상지이고 첫 국가의 발상지였다는 사실이 힘있게 증명되었으며,
우리민족은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단일민족임을 떳떳이 자랑할수 있게
되었다"

평양이 고조선의 도읍이었을 뿐만아니라 인류의 발상지였다고 추켜올린
이 보고서는 "단군릉"에서 발굴한 남여의 유골을 분석한 결과 단군은
170 의 장대한 골격의 소유자였고 그의 아내는 노동을 모르고 자란
섬약한 귀족이었다는 상상력 풍부한 설명도 곁들였다.

5011년전이라면 신석기시대 후반인데 왕관으로 보이는 금동관이 함께
출토됐다는데 이르면 어안이 벙벙해진다.

한편 그들은 구석기시대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을 현대인류학의 혈청
분류방식을 적용해 분석한 결과 "조선족"의 특징이 이미 구석기시대
말기에 형성됐다고 주장,구석기시대인이 직계조상이라고 우기는 억지도
부린다.

북한은 최근 10월초 완공을 앞둔 엄청난 규모의 소위 "단군릉"준공식에
남한의 정계 학계 사회단체인사들을 대거 초청했다.

"봉이김선달"까지 인민의 투사였던 실재인물로 내세우는 판국에 단군을
실재인물로 꾸며내기는 더 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평양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표방하는 정권의 정통성확보를
위한 거대한 상징물이 하나 더 생겨난 것만은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