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이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따라 노래방에 갔다가 만원사례로
되돌아 온적이 있었다.

이 사실은 노래방이 우리 사회문화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게 되었다는
증거가 된다.

또한 노래방이 생겨 국민의 노래수준이 많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옛날 손뼉으로 장단 맞추던 노래에서 키타가 등장해 선풍을 일으켰고,
이제는 음반을 통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생활화된 것이다.

이처럼 노래는 우리의 생활과 함께하며 발전해 왔다.

우리회사가 창립된 이듬해(1976년) 몇사람이 모여 노래를 시작한 것이
합창단의 시작이었다.

당시 초대 합창단장 이덕희(현부사장)를 중심으로 총무를 맡은 필자,
한청수(국제부장)김창겸(명동지점장)등이 창설멤버이다.

처음에는 연습실과 피아노도 없어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단원들이
늘어나며 강당과 피아노를 확보 하게 되었고 합창부가 서서이 제모습을
갖추어 갔다.

거기에다 최흥기(현서울시립합창단장)씨가 무보수로 지도해 주어 79년
에는 전국 시도직장단체대항 새마을 합창경연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매년 연말이면 축제가 열리는데 바로 송년음악회이다.

부,지점대항 합창경연대회,초대가수 ,합창단공연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벌어지는 음악축제가 창단이래 지금까지 한해도 거르지 않고 행해 내려져
오고있다.

합창단 하나의 애로점은 여자단원의 절대부족이었다.

여기에서 남성중찬단이 파생된 것은 당연한 요구였다.

점심시간에 틈틈이 모여 노래를 불렀는데 대중가요,성가곡,한국가곡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쌓아 나갔다.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로 MBC-TV "우리들의 노래"에 출연하여 뜻밖에도
90년 연말 결선대회에서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그후부터 방송사,직장,단체에서 초빙이 쇄도 했는데 그중에서도 MBCTV의
91년구정특집 한국가곡음악회에서 오현명 엄정행 윤치호 백남옥 김학남
양은희등 한국 성악계의 거성들과 협연했을때의 뿌듯함을 잊을수가 없다.

지금도 오봇하게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나와함께 백원기,배수홍,
송석문,정구영,윤창선,서경민,오세응이 바로 우리들이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화음은 포근한 안정을 가져다 준다.

여러사람이 모여 각기 다른 음으로 하모니를 만들어 낼때 가슴에 솟아
오르는 희열을 서로 교감하며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