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나라가 망한 뒤의 삼국시대때 오나라가 위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오의 손권은 전종을 대장으로 삼아 작피에서 왕능이라는 위의 장군과
격전을 벌였으나 대패하여 전종을 비롯한 10여명의 장군이 전사했다.

이때 수춘에서 작전중이던 부장인 고승과 장림이 이 소식을 듣고
작피로 출동하여 위군의 진격을 저지시킴으로써 위기를 넘겼다.

한편 전사한 전종의 생질이자 부장인 전서와 전서도 반격에 나서
위군을 크게 후퇴시켰다.

전투가 끝나자 오나라조정에서는 그들의 전공을 둘러싸고 격론이
벌어졌다.

적의 침공을 저지시킨 공이 더 크냐,적을 후퇴시킨 공이 더 크냐하는
것이었다.

결국 퇴적보다 주적의 공이 더 크다고 결론이 났다.

고승과 장림은 정장군,전서 형제는 편장군으로 각기 승진되었다.

이 일화는 논공행상이라는 말이 역사상 처음으로 쓰이게 된 전말이다.

공직자의 공적 유무와 대소를 진지하게 비교 검토하여 상을 내리는
포상제도의 시초였던 셈이다.

그러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논공행상은 허울로만 남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공적이 있는데 포상을 못받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아무런 공적이 없거나 비리와 부정을 저지르고도 포상을 받는 것이다.

신상필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에서 어찌 밝은 내일을 기대할수
있겠는가.

엄청난 세금액을 도둑질한 인천 북구청 세무공무원들이 많은 상을
받아왔다는 사실은 그동안의 포상제도에 얼마나 큰 허점이 있었는가를
드러내준다.

부정관련 공무원 9명이 모두 21차례에 걸쳐 시장상 도지사상 내무부장관상은
물론 대통령표창 대통령근정포장까지 받았다.

그들의 "공적조서"를 보면 기가 막힌다.

"투철한 국가관과 사명감" "자치단체의 재정확충에 기여" "부동산투기
근절대책에 일익" "세무전문인력양성에 앞장"등 그들의 행태와는
정반대되는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처럼 거짓조서를 상신한 직속상관들도 책임을 면할수는 없다.

당국자들은 조선조 실학자 차산 정약용의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공이 있어도 상을 주지 않으면 백성들은 힘써 일을 하지 않을 것이요,죄가
있어도 처벌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죄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온 국민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모든 일이 갈피를 못잡게
된다" 당국은 이번 기회에 그동안의 고질적인 나눠먹기식 포상제도
운용에 대수술을 가해야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