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제네바에서 시작된 북-미 3단계 고위급 회담 2차회의는
당초 예정했던 29일 시한을 넘겨 오는 5일 수석대표가 참석하는 회담을
속개키로 했지만 향후 전망은 지극히 불투명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나마 회담이 결렬되지 않고 계속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1주일간에 걸쳐 나온 북한과 미국의 핵 해법 구도가 너무나
상이해 어떤 정치적 타결이 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실무차원에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가닥 희망을 걸게 하는 대목은 지난달 29일 회담이 종료되던
시점에서 북한측이 회담연장에 적극적으로 나온 것이다.

적어도 그동안의 강경입장에 어떤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서방측에 던진 것으로 보는 관측도 있는 형편이다.

크리스토퍼 미국무장관도 이와관련,"아직 제네바회담에 대해 결론을
내리는 것은 시기상조며 융통성이 발휘될 희미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북.미 양측은 지난달 하순 진행된 제네바회담에서 8월12일의 양측
합의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견도 없었다.

서로 정한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는 뜻이다.

<>북한에 건설중인 흑연감속원자로의 동결<>관계정상화<>한반도
비핵화선언 이행<>북한의 핵안전협정이행등 원칙론에는 의견을 같이하면서도
그 방법론에 있어 엄청난 시각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우선 특별사찰의 실시시기가 쟁점이었다.

미국은 당초의 입장에서 다소 후퇴,경수로 건설계약이 체결되고
건설기자재가 북한에 본격적으로 반입되기 전까지는 특별사찰이
성사되고 북한핵의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이에대해 한마디로 경수로가 완공된 뒤에라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한국형경수로나 한국이 주도하는 경수로지원은 받아들일수
없다는 입장도 전달했다.

영변의 5MW급 실험용원자로에 대해서 북한은 지역난방과 실험연구를
위해 핵연료재장전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반면 미국은 핵연료재장전이
제네바합의에 위배된다고 반박했다.

폐연료봉처리를 놓고서도 양측은 맞섰다.

북한은 주권론을 내세우면서 국내에 그대로 둔 채 건식보관하겠다는
주장으로 나왔고 미국은 핵투명성을 영구적으로 보장하겠다며 제3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와함께 북한이 들고나온 흑연감속원자로건설중단에 따른 보상도
쟁점이었으나 양측은 이 역시 아무런 의견접근을 보지 못했다.

회담이 지지부진한 양상을 보이는 것과 함께 페리미국국방장관이
"북한이 종전의 주장만을 되풀이할 경우 북한에 대한 실제적인 조치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해 "군사제재"가능성을 시사하자 북한 외교부는
이를 강력히 비난하는등 양측간의 외교공세도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는
양상을 나타냈다.

그렇다면 5일 속개되는 제네바회담도 양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긋다가
결국 종료되고 마는 것인가.

완벽한 합의를 이끌어 낸 채 제네바회담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기도
어렵지만 완전 결렬로 끝나기에 양측의 부담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번에 속개되는 회담이 결렬될 경우 미국은 미국대로 북한에 대해
어떤 가시적인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이 있고 북한은 북한대로
새 정권이 출범한 지도 얼마되지 않아 서방을 상대로 "게임"을 계속해야
하는 힘든 처지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내달의 미국중간선거,김정일의 국가주석직과 노동당총서기취임이라
는 정치행사가 현실적으로 예정되어 있다는 점도 회담이 결렬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준거로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다.

다시말해 양측 모두 회담결렬이 가져올 파장이 부담스러울수 밖에
없는만큼 어떤 정치적 절충을 시도,타결짓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핵문제는 불투명하다.

북.미 양측도 강조하는 것처럼 북한핵문제는 "포괄적 타결"이 그
목표인 때문이다.

이는 어느 부분에서는 타결이 되고 다른 부분에서는 타결이 안되어도
상관없는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가 마주보고 돌아가는 수레바퀴처럼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수로와 특별사찰의 서로 다른 해결은 불가능하다.

현재 미국을 방문중인 한승주 외무부장관은 잇단 접촉을 통해 한미공조체제
를 역설하고 있다.

만일의 경우 회담의 결과에 쫓긴 미국이 한국정부와 국민의 의사를
배제한 채 평양과의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낼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와관련,한미양국은 서울과 워싱턴이 일치하지 않는 평양과의
어떤 합의도 있을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만큼 속개되는 제네바회담 성패의 키는 북한이 일단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것 같다.

< 양승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