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재한광사장(36)은 미국유학생출신으로 제조업체를 창업했다.

그는 뉴욕시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딴뒤 지난 90년 귀국,아예
딴 생각은 엄두도 내지않고 한광을 세웠다.

미국대학에서 MBA를 받으면 국내에 들어와 금융기관이나 대기업의
문을 두드리는게 일반적이나 그는 고단한 중소업체 사장의 길을
택했다.

창업아이템은 레이저가공기.당시만해도 국내에선 이장비가 "희귀"했다.

"기계를 만드는 기계"인 레이저가공기는 그때 이미 유럽 일본 미국등지에선
신시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레이저가공기와의 인연은 미국에서의 한 전시회에서 이뤄졌다.

첫 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귀국 즉시 그는 일을 벌여 후배와 함께 한광을 설립했다.

부모로부터 받은 도움은 돈을 빌리는데 담보를 제공받은 것뿐이었다.

나머지는 백지에 그림을 그리듯 하나하나 계사장의 머리와 발에
의해 짜여졌다.

이미 유학생활중 학비를 벌기위해 제이통상이란 회사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가 뭔지를 감지해온 터였다.

금융권이용과 영업에서 유학파란 점이 유리하진 않았다.

일부러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디선가 알고 "사업이 안되면 다시 떠날수도
있는것 아니냐"는 식의 곱지않은 시선을 받았다.

그러나 그건 잠시뿐이었다.

회사가 일정규모에 이르기전까지는 사장의 사람됨이 신용의 바로미터가
된다.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난관을 뚫었다.

아직 젊지만 연배가 높은 선배사장들이 계사장을 아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광은 만 5년만에 30대의 레이저가공기를 판매했다.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이시장에서 정상을 차지한 것이다.

종업원 35명에 올해의 경우 70억원의 매출목표를 세워놓고있다.

한광의 빠른 성장세는 계사장의 먼곳을 보는 안목에서 나왔다는게
내외의 시각이다.

그는 유학파답게 국제감각이 뛰어나다.

요즘 사업은 안방장사가 아니다.

국제감각을 갖지않으면 2류로 전락한다.

계사장은 자신은 물론 종업원들을 해외에 자주 내보낸다.

지난해엔 세계적인 레이저가공기메이커인 스위스의 비스트로닉스와
기술제휴,종업원들의 국제화를 체계적으로 이뤄나갈 기틀을 마련했다.

한광이 후발업체이면서 레이저시장에서 선두에 설수있었던 것에는
종업원들의 국제화된 감각이 보이지않는 힘으로 작용했다.

한번 거래선을 트면 휴일도 마다하고 사후관리를 해준다.

애프터서비스(AS)에 나서는 종업원들도 형식적이 아니다.

그건 국제감각이 몸에 밴 덕이라고 계사장은 생각한다.

계사장은 사람을 좋아한다.

종업원들과 어울려 소주잔을 기울이는 걸 꽤 즐긴다.

한번 신세를 지면 꼭 갚는다.

그는 부친에게서 근검절약을 배웠다고 말한다.

전주예수병원이사장으로 있는 계준혁씨(68)가 부친.계사장은 "부친은
운전기사를 안두는것은 물론 손수 차를 닦을 정도로 검약하다"며
그러면서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혜를 심어줬다고 말한다.

계사장은 레이저가공기의 국산화율을 높여나가 향후 해외시장에도
내다팔고 싶어한다.

자신이 강점을 보이고있는 해외비즈니스에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다짐한다.

< 남궁 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