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온 에도를 보고 사이고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가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이 한적한 온천여관까지 그가 불쑥 찾아온
것도 뜻밖이었지만,두눈에 핏발이 서고,머리가 온통 헝클어진,초췌하기까지
한 몰골이 지난해 10월 도쿄에서 마지막 본 때와는 너무나도 딴판이었던
것이다.

사이고는 대뜸 봉기가 실패로 끝났구나 싶었다.

사가성을 점령했다는 기별을 받았고,또 정부군이 재빨리 공격을
개시했다는 소식도 듣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웬일이오? 어서 올라오오" 사이고는 덥석 에도의 손을 잡으며
반겼다.

황혼 무렵이었다.

먼저 에도를 목욕시키는게 순서겠다 싶어서 사이고는 그를 데리고
욕실로 갔다.

두 사람은 벌거숭이가 되어 탕속에 들어가 얼굴만 내놓고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 말이 없다가 에도가 먼저 입을 열어, "살려주시오.사이고 도노"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됐소?" 뻔히 짐작하면서도 사이고는 물었다.

"풍전등화 격입니다" "음|" "그러나 아직 가망은 있습니다.

사이고 도노께서 원군을 보내주시기만 하면. 사이고 도노,내가 제2
유신의 막을 올렸으니,이제 사이고 도노가 일어서야지요.

사이고 도노만 일어서시면 도사에서도,조슈에서도,그리고 전국 각지의
우리 편들이 다 들고일어날 겁니다" 이미 사가성이 함락되어버린
줄을 모르는 에도는 진지한 표정으로 애원을 하듯 말했다.

사이고는 아무 대답없이 지그시 두눈을 감았다.

한참만에 눈을 뜨며, "자,에도공,어지간히 몸이 불었으니 나가자구요.

내가 등을 밀어줄테니까" 하고 일어서더니 먼저 욕탕에서 나갔다.

에도는 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 나갔다.

에도의 등을 밀어주며 사이고는 말했다.

"목욕을 한지가 무척 오래된 것 같구려.때가 많이 밀리는 걸 보니."
"허허허." 에도는 약간 어이가 없는 듯이 웃었다.

물론 목욕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지금 자기는 등에 때가 많이 밀리거나 말거나 그런게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남의 쫓기는 듯한 막다른 심정은 모르는체 젖혀두고,그런 한가한
소리를 하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사가를 떠난게 언제요?" "지난
이십삼일 떠났지요" "그럼 벌써 근 열흘이 되었구려.그렇다면. 음|"
사이고는 말끝을 흐리고,무거운 신음소리를 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