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봉진 부장]

지난2월 네덜란드의 악조(AKZO)와 스웨덴의 간판기업 노벨(Nobel)이 합병
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거대기업들의 매수합병(M&A)과정에는 많은 이야기거리가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흔히 ''기업 사냥꾼의 준동''으로 묘사돼 온 M&A시장은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지기 보다는 부도덕하고 야만적인 기업살상장으로 비쳐지기까지 했다.

미국의 거대 식품회사인 RJR 나비스코의 몰락을 그린 ''문 밖의 야만인들''
(Barbarians at the Gate)은 그 좋은 예라고 할수 있다.

M&A는 미국에서만 3,369억달러 상당의 시장이 형성된 88년을 고비로 한풀
꺾였었다.

그러던 매수합명시장이 올들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금년 상반기 미국에서만 2,100억달러 상당의 M&A시장이 형성되어 연말
까지는 기록을 깨뜨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악조-노벨의 탄생과정에서 산파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세스 판 레데
악조-노벨 회장을 네덜란드 아넴시에 있는 그의 사무실을 찾아가 만나
보았다.

-네덜란드 악조의 스웨덴 노벨사 인수는 세계인의 주목을 끈 뉴스거리
였는데.

<> 판 레데회장 =해외에서는 우리 악조가 노벨을 인수한 것처럼 보도
되었지만 우리는 "인수"라는 말을 쓰고싶지 않다.

둘이 "합병"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다.

물론 합쳐진 이후에도 악조-노벨의 본부가 네덜란드 악조의 "홈 타운"인
아넴시 (암스테르담에서 1백10km 정도 동쪽에 있음)에 있고 악조출신인
내가 회장으로 있으니 마치 악조가 새회사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악조와 노벨은 이제 악조-노벨이라는 새로운 이름의 배를 같이
탄 공동운명체이고 파트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악조의 과거사를 돌이켜 보면 합병을 통한 여러 차례의 변신과정이
있었는데.

<> 판 레데회장 =악조-노벨은 여러회사들이 결합하면서 발전해왔다.

1792년 같은 해에 설립된 네덜란드의 시켄사와 독일의 벰버그사
모태가 되었다.

또한 소금회사였던 KNZ,육류회사였던 즈와넨버그,제약(오가논),화학섬유
(EN KA)등 여러 회사들과 결합되는 과정이 계속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노벨과의 결합도 역사적으로는 변신과정의 한부분에
불과한 것이라고 볼수 있다.

-합병동기는 무엇이었나.

<> 판 레데회장 =악조는 악조대로 강점이 있고,노벨은 노벨대로
강점을 가지고 있는 부문이 있었기 때문에 이둘을 합해서 얻을수
있는 시너지( Synergy )효과가 크리라 믿었다.

흔히 말하는 규모의 경제도 찾을수 있고 국경이 없어져가는 세계의
흐름에도 발맞춘다는 의미도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는가.

<> 판 레데회장 =여러 부문에서 실적이 개선되고 있어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고는" 있으나,그러한 결과들이 순전히 합병때문이었다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병이 우리에게 큰도움이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합병을 했고 또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합병이후에 조직의 재구성등이 필요했을텐데 그작업은 끝이 났는가.

<> 판 레데회장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러나 96년까지는 조직의 재구성을 완결하려 하고있다.

우리는 50개국에 7만3천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거대한 회사이기
때문에 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 간단한 일도 아니고 그리 쉽게 결정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으로 무한경쟁시대가 도래하고 있는데
이러한 질서에 적응하기 위한 장기전략이 있다면.

<> 판 레데회장 =년 1백20억 달러가 넘는 우리회사의 외형을 분류하면
일반화학 제품의 비중이 36%를 차지하고 있고 코팅제품(31%),제약(17%)
그리고 화학섬유(16%)순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주도적인 위치와 기술적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울러 내부적으로는 생산성을 향상하고 재정적 건전화를 유도하며
북미와 일본에서의 업계위상을 높이려 하고 있다.

중국등 동북아,그리고 동남아의 잠재시장을 놓치지 않는다는 전략도
세워놓고 있다.

-장기발전전략의 하나로 다른 업종에 손을 댈 계획은 없는가.

<> 판 레데회장 =다각화를 하여 리스크를 분산한다는 것은 좋은
생각이지만 우리가 하고있는 화학분야에는 아직도 새로이 개발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

더욱이 현재 우리가 확보한 위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된다고 본다.

현재 하고 있는것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너무 많이 벌여 놓는것은 좋지 않다.

-한국에서의 영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판 레데회장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우리가 한국기업과 합작해 운영하고 있는 회사(한화제약및 고합-AKZO)도
만족스럽게 돌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바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들면 한국에서의 임금수준이 너무 급격히 올라 상당한 원가상승압박을
받고있고 토지가격이 비싸 영업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받고있다.

한국기업들 조차도 베트남이나 태국 인도네시아등으로 옮기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한국의 노사분규가 여기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 판 레데회장 =우리도 190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는 심각한 노사
갈등을 경험했다.

그러나 노사간의 끊임없는 대화와 이해의 축적으로 노사문제는 이제
해결되었다고 본다.

사람이 사는데 갈등이 없을수야 없겠지만 집단적인 폭력이 행사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회사가 많은 수익을 낸 경우 그 과실을 같이 나눈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에는 회사 나름대로 사정이 있기때문에 상황에 따라 양자가
이해할수 있는 선에서 의견 일치를 이루려는 자세 또한 중요하다.

-중국시장에 대한 평가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 판 레데회장 =중국의 인구와 자원의 크기는 매력적인 잠재력을
시사한다.

특히 중국은 21세기를 주도할 경제대국이 될것이라고 믿고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북경 광주 청도 그리고 상해에 사무소를 개설하고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즈음들어서는 중국인들의 네덜란드방문도 부쩍늘어났다.

이 대담이 끝나면 바로 중국사람들과 회의가 예정되어 있다.

-네덜란드 경제인연합회회장을 역임했는데 네덜란드정부와 민간기업간의
관계는 어떻게 평가하는가.

<> 판 레데회장 =네덜란드의 정부.민간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며
협조적이라고 생각한다.

업계가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을때 정부는 귀담아 들을줄 알고 이를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는데.

<> 판 레데회장 =물론 민간기업의 창의력과 자율을 저해할 정도의 과도한
정부개입은 지양되어야 하겠지만 어느 경제체제이고 정부의 계획과 조정
기능이 무시되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조-노벨은 유수의 화학회사이고 따라서 공해문제에 민감하지
않을수 없다고 보는데 공해문제에 대한 철학이나 정책을 설명한다면.

<> 판 레데회장 =환경문제는 우리회사가 "건강( Health ),안전( Safety ),
환경( Environment )"을 한데묶어 HSE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정도로 중요
하게 취급되는 문제이다.

환경과 관련된 모든 사안은 라인조직의 책임아래 추진되고 있다.

환경보호는 우리회사의 사활을 결정지을만큼 중요한 문제일뿐 아니라
멀게는 국가와 세계시민으로서의 지켜야 할 도리라고 믿는다.

환경파괴는 자기파괴라고 본다.

-WTO 출범을 앞둔 요즘 한국에서는 국제화가 주요의제로 취급되고
있고 그에따라 외국어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다.

국제화라는 단어에 대해 느끼는점은 무엇인가.

아울러 네덜란드인들이 여러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 판 레데회장 =네덜란드인들이 외국어에 능한것은 교육때문만은
아니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우리 네덜란드말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의
말을 배워야 하는것은 당연하다.

국제화는 이런 자세가 있을때 자연히 생활속의 일부가 되는 것이지
누가 국제화를 주창한다고 되는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귀하는 몇나라 말을 할 줄 아는가.

<> 판 레데회장 =네덜란드어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등 7개국어를 한다.

-여기에 와 보니 네덜란드가 유통부문에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판 레데회장 =로테르담에 가보았으면 알겠지만 네덜란드는 분명
유통분야에서 그 어느 유럽국가보다도 유리하고 또 완벽한 체제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유통만 하는 나라는 결코 아니다.

우리회사처럼 화학을 하는 회사도 있고,식품제조 전자등 많은 제조부문
에서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이 유럽에 진출하는데 있어 네덜란드가 다른 국가보다
유리한 지역이라고 주장할수 있는 요인이 있다면 어떤것이 있겠는가.

<> 판 레데회장 =지리적으로 독일 프랑스 영국등에 가까이 접해
있어 유럽에서의 활동을 총괄하기에 유리할뿐 아니라 네덜란드인들의
성실한 근무태도는 현재 법인 운영경비를 줄이는데도 한몫 할 것이다.

(스포츠라면 모두 좋아하지만 골프는 그리 즐기지 않는다는 판
레데회장은 그림과 음악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다고 악조-노벨직원은
귀띔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