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골프시즌도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남자골프는 SBS최강전을 끝으로 공식경기를 모두 종료했고 여자는 7일
시작되는 서울여자오픈 한경기만을 남겨 놓고 있을 뿐이다.

그러면 94시즌의 최고는 무엇이고 최악은 무엇인가.

금년도 한국골프의 이모저모를 총정리해 본다.

<> 가장 행복한 여자골퍼 =고우순(30)

지난 4월 첫주말의 일본LPGA대회 기분여자클래식.

1라운드에서 고우순은 선두 시오타니 이쿠요(33)에 5타차였고 2라운드
에서는 2타차였다.

이대회는 고우순이 시드를 배정받은 마지막대회로 이대회가 끝나면 한국
으로 보따리를 싸 내년 시즌이나 기약해야할 처지였다.

그런데 고우순은 여기서 "기적과 같이" 우승했다.

"우승하리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에라 모르겠다고 툭툭치는데 상대가
먼저 무너지더군요"

상대인 시오타니 이쿠요는 현재 일본상금랭킹1위의 노련하고도 노련한
프로였으나 한국에서 온 이름도 모르는 고우순이 따라오자 스스로 무너지며
마지막날 무려 84타를 쳤다.

일본데뷔 첫해의 예기치않은 우승으로 고는 금년시즌내내 남은 경기에
참가할수 있었고 내년 시드까지 따냈다.

고는 한국대회에 두번 참가, 우승한번(LPGA선수권)에 2위한번(팬텀오픈)의
알토란 같은 성적을 올려 더이상 바랄것없는 1년을 보냈다.

<> 베스트 코멘트(1) ="이거 치다가 내가 죽으면 당신이 책임 질거야"

서울지방기온이 섭씨38.4도까지 올랐던 지난 7월말 어느날 N골프장.

골퍼 K씨가 80 퍼팅을 하려다 말고 어드레스를 풀더니 그같이 외쳤다.

"이 무더위에 쇼트퍼트 넣으려다 쓰러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얘기.

동반자들도 K씨의 얘기에 공감, 그날만큼은 웬만하면 "기브"를 주었다나.

실제 K씨는 며칠전 한골퍼가 퍼팅하다말고 쓰러져 실려나가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 최대의 해프닝 =청와대 비서실의 "불골프선언"

지난3월, 공직자들의 골프금지 분위기는 살살 맥이 빠지고 있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는 소리도 들렸다.

공직자 골퍼들은 "쓸데없는 것을 쓸데없이 막는것은 역시 쓸데가 없는 법"
이라며 희망을 가지기 시작.

그러나 주돈식 청와대공보수석이 어느날 기자들 앞에서 "대통령이 골프를
안치는한 청와대 비서진들도 절대 골프를 안치겠다"고 공식 발언했다.

이 발언으로 공직자골프는 "더욱 공식적"으로 금지 됐다.

소신파들은 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외관상으로는 "공직자 골프금지"가
국제적으로 공인된 셈이다.

<> 초지일관상 =이민섭문화체육부장관

주요골프대회가 열릴때 체육부장관이 시구를 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관례.

그러나 이장관은 "그것만은 못하겠다"는 소신이 취임이후 불변이다.

이유야 모두가 알고 있는것이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문화체육부차관이 나와 시구를 하는데 차관은 골프를 원래 안치는
사람.

그러니 시구하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는 주변 얘기들이다.

차관시구는 되는데 장관시구는 안되는 논리야말로 현정부의 "사고방식"
한계를 드러내는것 아닌지.

<> 칼을 뽑으려면 일찍 뽑아야지 =문화체육부의 골프행정

그린피 자율화방침에 따라 지난7월부터 각 골프장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그린피를 올리기 시작했다.

선두주자는 서울한양CC였는데 한양의 비회원 7만5천원 발표가 처음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른 골프장들은 "올려도 괜찮구나"하며 속속 그린피를 올렸다.

그런데 대부분 골프장이 그린피를 올린후 한달쯤지나 문화체육부는 "7만원
이상은 안된다"며 한국골프장사업협회등에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골프장들은 다시 그린피를 내릴수 밖에. "말그대로 자율화가 될것은
기대도 안했지만 처음부터 제동을 걸었으면 올렸다 내리는 볼썽사나운
모습은 없었을게 아니냐"는 한 골프장 사장의 코멘트.

우르르 올리는 골프장이나 "자율"을 명시해 놓고 첫해부터 압력을 가하는
관리들이나 모두가 딱한 사람들이다.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골프클럽수입상들

내년부터 골프채에 붙는 특소세가 60%에서 25%로 인하될 예정이라는
소식에 국내 골프용품메이커및 수입상들은 "사상최대의 희소식"으로 반기는
표정.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지난8월말 이후 매기는 뚝떨어져 올연말까지의 장사가
"개점휴업"식이 돼버린것.

요즘 골퍼들, 워낙 "영악"하기 때문에 특소세 내린후 값싸게 사겠다며
구매를 기피하고 있는것.

국회통과 때문에 어쩔수 없었겠지만 8월의 발표는 몇달장사를 망치고
있다는 하소연들이다.

<> 베스트 코멘트(2) ="천하가 다알고 있다. 모르는 사람은 아마 장관뿐일
것이다"

수십년동안 세금을 포탈한채 들여오는 소위 "나카마"채의 횡행은 세관비리
의 상징으로 볼수있다.

국내에서 나돌아다니는 외제 골프채의 80%이상이 "나카마"인 것은
골퍼들이나 업자들이 모두 익히 알고있는 상황.

그같은 말은 그래도 "나카마"가 없어지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기세를
부리는데 대한 "신문기사"의 한토막이었다.

<> "두고보자" 성공상 =송채은(아마국가대표)

지난해 제1회FILA여자오픈에서 송채은이 우승하자 누군가 "송채은의 외모와
FILA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라고 말했다나.

이소릴 전해들은 송채은은 "그래요, 그럼 내년에도 우승해야 되겠네"하며
칼을 갈았다.

결국 송은 금년 FILA오픈에서도 연속우승에 성공했다.

<> 명예는 아마에 돈은 외국선수에 =한국남녀프로골퍼들

한국여자 골프계에서 아마가 프로보다 한수위라는 것은 이제 뉴스감도
못된다.

그러나 우승은 아마에게 빼앗겨도 상금은 프로들 몫이니 여자프로들의
실질적 손해는 없는셈.

반면 남자프로들은 신한동해 한국오픈등 고액상금대회 우승을 잇달아 외국
선수에게 내주는 양상.

이런 판국에 "아마들은 체계적 훈련을 받으니까 잘 칠수밖에 없다"는 일부
여자프로들과 "상금이 적어 레슨을 해서 먹고 살수밖에 없다"는 일부 남자
프로들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원재숙

원재숙이 올시즌 일본무대에서 3승을 올린것은 정말 대단한 쾌거.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원재숙은 다른 한국선수들과는 달리 일본프로들
하고만 적극 어울리고 있다.

일본프로 2년생인 원으로서는 한국선수들끼리 어울려 다니는게 상례일텐데
그녀의 의식은 "일본에서 성공하려면 일본프로들에의 침투가 중요하다"는데
있는 모양.

어찌됐건 성적이 좋으니 "그녀방식"도 옳은것이 되는 셈이다.

<> 그린키퍼상 =남부CC

유난스런 올여름 폭염에 전국 각골프장은 잔디가 절단나지 않은곳이 없을
정도로 코스관리에 고생을 했다.

아무리 명문일지라도 그린 한두군데는 짜깁기한 곳이 나타나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남부CC 그린은 기운곳이 하나도 없었다는 얘기.

<> 가격파괴의 효시 =톱플라이트XL골프볼.

올봄부터 (주)정스포츠는 12개들이 한박스에 3만5천원 받던 톱플라이트
XL골프볼을 한박스에 2만8천원을 받으며 "골프볼 대중화"를 선언.

골프볼이라는게 "거리"는 비슷하고 문제는 "느낌"이라는 점에서 그같은
전략은 세계적인 가격파괴추세와 더불어 적시 아이디어였다는 평.

<> 40세에 시작하는 골프 =최상호

55년생인 최상호는 한국나이로 금년 40세.

그는 금년에 케임브리지오픈등 3승을 올리며 쾌속 전진했다.

그가 제 컨디션으로 치면 다른선수가 우승할수 없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의 "스타성"은 올해 두드러졌다.

20,30대프로들이 최앞에서 맥을 못추는 것은 결국 "최상호의 몸만들기"와
"최상호의 심리전"을 따를자가 아무도 없음을 증명하는 것.

비슷한 스코어로 최종라운드에서 최와 붙으면 다른 선수들이 제풀에
무너지는 것이 금년의 한국골프였다.

<> 기여는 안하면서 하소연만 한다 =한국골프장들

한국골프장만큼 골프장대여에 인색한 나라도 없다.

대회를 창설하려해도 골프장 대여를 못해 포기할 정도.

금년만해도 창설예정이던 슈페리어오픈이 대회장소 문제때문에 주저
앉았다고 한다.

골프장들도 할말은 많을 것이다.

회원들 등쌀을 배겨내기도 어렵고 코스관리에도 문제가 생기며 더 중요한
것은 세금내기 바쁜 판국에 수입손실을 입으면서까지 골프장을 빌려주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골프를 주제로 사업을 하는 골프장들은 한국골프의 발전에도 이바지해야
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을 것이다.

굳이 "의무"라는 거창한 용어를 빌리지 않더라도 1년에 대회 한개 정도는
열줄 아는 "멋"이 골프장에는 있어야 한다.

내 골프장은 내마음대로"를 떠나 서로 한발 물러서서 베풀줄 알아야
왜곡된 인식들이 점차 바로 잡힐 것이다.

베풀지도 않으면서 세금문제만 하소연 하는등 일방통행하면 이제까지
골프장을 잘 이해해왔던 계층조차 등을 돌릴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 김흥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