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불혹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황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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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경 < 아가방 홍보실장 >
"불혹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입사 15년만에 처음으로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마구 쏟아놓으려고 벼르고 별렀는데 사장님께서는
단지 이한마디로 완전히 기선을 제압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 이미 내가 형편없이 깨져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가질수 있었다.
27세에 입사하여 아들(중1)낳고 딸(국3)낳고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그동안 아가방과의 인연을 일생일대 최고의 행운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고 보낸 15년여. 입사때 십여명 남짓했던 직원이 어느새 6백명이상으로
늘어났고 남의 빌딩 한켠의 가난하고 궁색한 셋방살이에서 강남
금융경제의 대동맥 테헤란로변에 자리잡은 15층짜리 현대식 빌딩의
주인이 되었다.
전기세를 많이 쓴다고 빌딩주인에게 갖은 구박을 다 받고 일요일에는
문을 안열어줘서 건물뒤 쪽문을 무릎걸음으로 넘나들었던 어려운
시절에도 그저 회사가 좋아서 재미있고 신나게 일했는데,하물며
새건물에 새책상에 에어컨과 히터가 가동되는 이렇게 우아하고 격조있는
환경에서 근무하는데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던 어느날 기습적으로 불어닥친 인사변동은 그동안 쌓아온
탑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참으로 대단한 충격으로 나를 쳐왔다.
입사직후부터 계속 맡아오던 업무가 한마디 상의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관됐던 것이다.
한동안 멍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정신을 차린뒤 "에잇 이건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사장님,저도 이제 불혹의 나이입니다"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단지 이 한마디 밖에 못했다.
조용한 미소와 그윽한 눈초리로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시던 사장님은
내가 숨을 죽인채 대답을 기다리느라 거의 질식사 직전까지 이르렀을때
바로 그때 이 한마디로 조용히,그러나 강하게 나를 깨운것이다.
"황실장,불혹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순리를 따르고 1년여가
지난 지금,결국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는데 그까짓 당장 더하고 덜한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듯 양은냄비에 올려놓은 콩튀듯 팥튀듯
했던 것일까.
요즘도 소비자상담실에 전화걸어 대뜸 반말로 큰 소리부터 치는
소비자,이쪽 얘기는 듣지 않고 무조건 높은 사람만 찾으며 단 하루도
진득하게 못기다려주는 심각한 참을성 결핍증들을 대할때마다 그때의
내모습이 생각나서 씁쓸하다.
지독했던 지난 여름으로 봐선 절대로 올것 같지 않던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 푸르렀던 나무들이 붉게 노랗게 물들어 가는 사무실
너머 대모산자락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때를 조용히 되새긴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이립)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며(불혹) 50세가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으며(지명)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이순)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종심). 옛 선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
일의 앞뒤를 살피지 못하고 흥분했던 일은 아직도 부끄럽다.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순리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으로 깊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겠다는 깨달음은 그 부끄러움속에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9일자).
"불혹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입사 15년만에 처음으로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마구 쏟아놓으려고 벼르고 별렀는데 사장님께서는
단지 이한마디로 완전히 기선을 제압해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 순간 이미 내가 형편없이 깨져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가질수 있었다.
27세에 입사하여 아들(중1)낳고 딸(국3)낳고 어느새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그동안 아가방과의 인연을 일생일대 최고의 행운임을 추호도 의심치
않고 보낸 15년여. 입사때 십여명 남짓했던 직원이 어느새 6백명이상으로
늘어났고 남의 빌딩 한켠의 가난하고 궁색한 셋방살이에서 강남
금융경제의 대동맥 테헤란로변에 자리잡은 15층짜리 현대식 빌딩의
주인이 되었다.
전기세를 많이 쓴다고 빌딩주인에게 갖은 구박을 다 받고 일요일에는
문을 안열어줘서 건물뒤 쪽문을 무릎걸음으로 넘나들었던 어려운
시절에도 그저 회사가 좋아서 재미있고 신나게 일했는데,하물며
새건물에 새책상에 에어컨과 히터가 가동되는 이렇게 우아하고 격조있는
환경에서 근무하는데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러던 어느날 기습적으로 불어닥친 인사변동은 그동안 쌓아온
탑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참으로 대단한 충격으로 나를 쳐왔다.
입사직후부터 계속 맡아오던 업무가 한마디 상의없이 다른 사람에게
이관됐던 것이다.
한동안 멍해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정신을 차린뒤 "에잇 이건 도저히 참을수가
없다"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양팔을 마구 휘저으며 사장실로
향했다.
그리고는 "사장님,저도 이제 불혹의 나이입니다"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단지 이 한마디 밖에 못했다.
조용한 미소와 그윽한 눈초리로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시던 사장님은
내가 숨을 죽인채 대답을 기다리느라 거의 질식사 직전까지 이르렀을때
바로 그때 이 한마디로 조용히,그러나 강하게 나를 깨운것이다.
"황실장,불혹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순리를 따르고 1년여가
지난 지금,결국 아무것도 변한것이 없는데 그까짓 당장 더하고 덜한
것이 무슨 큰일이라도 되는듯 양은냄비에 올려놓은 콩튀듯 팥튀듯
했던 것일까.
요즘도 소비자상담실에 전화걸어 대뜸 반말로 큰 소리부터 치는
소비자,이쪽 얘기는 듣지 않고 무조건 높은 사람만 찾으며 단 하루도
진득하게 못기다려주는 심각한 참을성 결핍증들을 대할때마다 그때의
내모습이 생각나서 씁쓸하다.
지독했던 지난 여름으로 봐선 절대로 올것 같지 않던 가을이 어김없이
찾아왔고 그 푸르렀던 나무들이 붉게 노랗게 물들어 가는 사무실
너머 대모산자락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때를 조용히 되새긴다.
논어의 위정편에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지학) 30세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였으며(이립) 40세가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으며(불혹) 50세가 되어서는
천명을 알았으며(지명) 60세가 되어서는 귀로 들으면 그 뜻을 알았고(이순)
70세가 되어서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종심). 옛 선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불혹을 넘어선 나이에
일의 앞뒤를 살피지 못하고 흥분했던 일은 아직도 부끄럽다.
어떤 일이 닥치든 먼저 순리를 받아들이는 겸손함으로 깊고 차분하게
자신을 돌아봐야 겠다는 깨달음은 그 부끄러움속에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