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해질녘 에도는 온천여관을 나서 가까운 어촌으로 갔다.

벳푸와 함께였다.

에도를 도사까지 태워다 줄 어선을 하나 물색하도록 사이고가 벳푸에게
지시를 했는데, 가까스로 배 하나를 세내어 어둠이 깔리면 떠나기로 했던
것이다.

사이고도 어촌까지 같이 가려고 했으나,에도가 그러면 자기의 신분이
탄로날까 두려우니 여기서 헤어지자고 해서 사이고는 여관밖 산모퉁이
에서 그와 작별을 했다.

멀어져가는 에도의 뒷모습을 향해 사이고는, "에도공- 꼭 도쿄로
가도록 하오. 알겠소-" 하고 마지막 당부를 했다.

목이 메이는 듯한 소리였다.

도사는 시코쿠 남쪽에 있었던 옛 번으로 유신후 행정구역이 고치현으로
바뀌었다.

여러 날 걸려서 그곳으로 건너간 에도는 하야시를 은밀히 만났다.

그곳에도 이미 에도를 비롯한 사가의 반란군 간부들의 체포령이
통고되어 있었던 것이다.

찾아온 에도를 대하는 하야시의 태도는 기선에서 처음 상봉했을 때와는
물론이고, 두번째 나가사키에서 만났을 때와도 판이하게 달랐다.

두렵고 귀찮아 하는 그런 태도였다.

에도는 하야시를 붙들고 봉기를 애원하다시피 했다.

마지막 안간힘인 셈이었다.

그러나 그런 말이 그의 귀에 제대로 들어갈리가 만무했다.

실패하고 쫓기는 처지에 봉기를 권유하다니, 자기가 빠진 물에 당신도
빠지라는 격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양반이 정신이 나간 사람 아닌가 싶어서 하야시는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내가 나가사키에서 뭐라 그랬어요? 사이고 도노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기어이 고집을 세워 봉기를 했으니 그게 성공을
하겠습니까?

사이고 도노가 일어서고, 전국의 불만 사족들이 다 뒤따라도 정부군을
상대로 승리를 할수 있을지 의문인데, 사가 단독으로 될 일입니까?

우리도 당신네 꼴이 되라고 봉기를 종용하는 건가요?"

에도는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었으나, 뭐라고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하야시는 자기의 말이 좀 지나쳤다 싶은지 한결 어조를 누그러뜨려
말을 이었다.

"에도 도노, 죄송한 일이지만 분명히 말씀 드리겠어요. 우리는 사이고
도노가 일어서기 전에는 절대로 먼저 봉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쯤 아세요. 그리고 이미 에도 도노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에도 도노의 목에 현상금이 붙어 있습니다. 각별히 조심하셔야지, 그렇지
않으면."

"음-" 에도는 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