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부들이 연금부담을 줄이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등 대부분의 유럽정부들은 국방비와 함께
연금을 대폭 삭감하는 내용의 내년도 예산안을 편성, 국회에 제출중이나
노조와 야당의 거센 반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럽정부들의 평균 재정적자폭은 전후 최대수준인 국내총생산(GDP)대비
6%선.

특히 유럽연합(EU) 12개회원국은 화폐통합에 대비, 이를 3%이내로 줄여야
하나 실업률급증에 따른 연금부담의 가중으로 재정압박은 갈수록 심해지는
실정이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그 자구책으로 연금대상 조건을 강화하고 실업수당액을
낮추는등 연금제도의 개혁을 통해 내년도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는 예산안을
잇달아 국회에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측은 퇴직후의 생계보장등을 위해 대규모 시위를 무기로 이에
팽팽히 맞서고 있어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탈리아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이탈리아의 연금수혜 대상은 총인구의 3분의1인 2천만명정도.

연간 정부지출의 30%이상이 연금을 지불하는데 사용된다.

재정적자규모가 GDP대비 10%에 이르는 이탈리아정부는 내년에는 재정지출을
29조리라(1백85억달러)삭감, 그 비율을 9%이하로 낮출 계획이다.

이탈리아정부는 이를위해 연금수혜 대상연령을 남성 65세, 여성 60세등
현재보다 각각 4년씩 늘리고 인플레에 연동, 증액해온 연금액을 줄이기로
했다.

또 조기퇴직제도를 제한하는등 연금개혁을 통해 7조6천억리라를 감축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대해 이탈리아 노조측은 반대입장을 단호히 밝히고 있다.

실비오 베르스코니총리가 지난달말 노조협상대표들과 직접 만나 3시간에
걸친 설득작업을 벌였으나 노조측은 "오는 14일 총파업"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정가에서는 가뜩이나 자신이 경영하는 그룹이 부정사건에 연루돼
입지가 약화된 베르스코니총리가 이번일로 정치적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될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다는 분석이 흘러나오고 있다.

오는 16일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도 연금삭감이 주요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유럽국가중 연금제도 개혁에 가장 적극성을 보이고있는 헬무트 콜 기민당
정부는 실업수당을 퇴직당시 급여의 63%에서 60%로 내린후 이를 점진적으로
삭감, 장기실업자에게는 53%만을 지급하여 연간 65억마르크(42억달러)의
정부지출을 줄이는 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에대해 야당인 사회민주당(SPD)은 "90만명의 장기실업자를 상대로 강도
행위를 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하고 총선의 주요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

선거결과 야당이 승리하면 이안은 사장될 것이 뻔하다.

프랑스도 사회보장비를 삭감, 5백19억8천만달러의 재정적자폭을 줄이는
내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으나 노조측은 물론 기업의 반발이
만만치않다.

특히 기업들은 삭감될 사회보장부담의 일부가 법인세 인상으로 전가되는데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내년상반기 총선을 앞두고 있는 현정권에 상당한 부담을 주고 있는 셈이다.

스페인의 경우 올들어 노동시장개혁과 함께 연금제도도 대폭 수정할 계획
이었으나 야권의 반대로 실패하고 말았다.

실업률이 EU회원국중 가장 높은 24% 수준인 스페인은 엄청난 연금지불로
재정적자가 GDP대비 6.7%에 이르고 있으나 반대의견에 밀려 오히려 확대
재정을 편성해야 하는 입장이다.

이달초 마드리드에서 열린 IMF총회에서 스페인의 연금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된것도 이때문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구호를 내걸고 2백여년간 사회보장제도를 정비해온
유럽정부는 이제 이제도의 희생을 통해 "회생"의 길을 가야하는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 브뤼셀=김영규특파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