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개별 경제주체들이 스스로 적응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정부규제가 너무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규제완화와 자유화정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자유화정책은 수단이어야지 목적인 것처럼 잘못 인식해서는
안된다.
모든 경제정책의 판단기준은 성장내지 발전, 물가와 고용안정, 형평성
확보에 두어지는 것이고 그래서 사회각부문의 발전단계나 상호역학관계가
중시되는 것이다.
매우 자유스런 시장경제라는게 지선일수 없는 이유는 "시장의 실패"라는게
있는 까닭이고 정부주도경제는 "정부의 실패"가 항상 걱정이다.
결국 어떤 분야는 보다 자유스런 시장에 맡기고 또다른 분야는 보다 정부의
조정을 중시하는게 옳은가 하는 판단문제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와같은
판단에 중요한 몫을 하는 몇가지 특징이 있다.
정보의 비대칭성, 부문간 경제력의 불균형, 민간부문의 자체조절능력부족
등이 시장자유화정책의 시행을 가로막는 대표적 요인들이다.
첫째로 정보의 비대칭성이 우리만큼 심한 경우도 많지 않을 것이다.
당사자의 허위선전과 철저한 위장, 알만한 사람에게 강요된 침묵이 판치는
사회에서 시장에서의 형식적 자유경쟁과 진입.퇴출의 자유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여기에는 역선택과 도덕적 함정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증권시장에서 내부자거래나 불완전공시가 그대로 방치되는
가운데서는 자유스런 거래가 효율적인 가격걸정과 공정한 게임의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또 상품에 관한 객관적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 상태에서 집중광고에 의한
특정기업의 매출증대를 그 기업의 생산성이 우월하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둘째는 기업규모별, 소득계층별 또는 지역별 불균형이 우리경제의 시장
경제화를 가로막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바이다.
이미 경제주체별로 엄청난 격차가 나있는 상태에서 이제부터는 자유경쟁
이라고 선언하면 도덕적으로도 용납될수 없을뿐 아니라, 자유경쟁이 지향
하는 합리적 수급조절과 전체사회의 효율성제고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기회의 원천적 불공평은 필연코 사회불안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동태적
효율성을 오히려 저해할수도 있다.
셋째로 민간경제주체들의 자율적 조정능력이나 준법정신이 문제이다.
특히 경제계를 이끌어 나가야 할 대기업들의 행태가 그들의 덩치나 영향력
에 비해서는 너무 근시안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과거 한정된 자원때문에 집중육성된 대기업들이 그동안 사회가 베풀어준
혜택에서 나온 결과를 기업내부구성원끼리만 배분하고 심지어는 중소기업들
을 밀어내는데 사용한다든지, 대기업들끼리의 소모적인 국내시장쟁탈전에
동원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이 시장경제자유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사회적 비용부담주체와 개인적 수혜계층이 일치하지 않는 사례는 단순히
환경 복지 안전 외국인근로자수용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 미성숙된 수요가 존재할때 어려운 환경속에서 시장을 개척하고,
미래를 위해 기능인력과 관련기업을 육성해 놓은 일부 중화학공업분야에
대기업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유경쟁의 논리를 갖고 참여하려는 데서도
쉽게 발견된다.
막강한 계열 금융기관과 수많은 계열회사들의 노골적 지원을 등에 업고
불공정경쟁을 할수 밖에 없는 체제는 유지돼야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들이
신규로 시장진출할때만 자유경쟁을 주장하는게 과연 비효율적 경쟁자를
퇴출시킨다는 시장경제원리에 맞는지 심각히 재고해볼 문제이다.
또 자본자유화의 초기단계에서 모든 국민들이 대가를 치를 인플레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내금융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도입한 외국자금을, 국내
다른기업들이 수행하기 어려운 사업보다는 오히려 성숙단계에 이른 분야에서
단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는한 폭넓은 시장자유화정책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경제구조가 왜곡되고 경제주체들의 올바른 자세정립이 불충분한
한국경제형편으로는 지금상태에서 단순히 자유를 달라고 요청할 일이
아니라, "정보의 대칭성 확보, 부문별 경제력의 균형회복, 경제적 강자들의
사회적 책임의식제고"등 시장자유화정책실시를 위한 선행조건 충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게 더욱 중요하다.
물론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자외적인 행정부의 개입을
방치하자는 얘기는 더욱 아니다.
정부가 해야 할일은 다수가 떠드는 주장에 맞춰 원칙없이 쉽게 따라가다가
부작용이 나타나면 그것 보라고 훈시하는게 아니라, 그들의 주장에 담긴
근본취지를 실현시킬수 있는 현실적여건을 어렵더라도 책임감 있게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