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서울대교수/경제학>

금본위제에서 금을 갖고있는 사람은 언제라도 이를 금화로 만들수 있다.

나라마다 금화의 주조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어 금을 가져가면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금화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 수수료 때문에 금화가 갖고있는 금으로서의 가치는 액면보다 약간
작은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금 10g에 해당하는 액면을 가진 금화속에 포함된 금의 양은
9g정도밖에 되지않는 현상이 나타난다.

만약 양자가 똑같다면 구태여 수수료를 내고 금화를 만들어 유통시키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부가 스스로 금을 조달하여 화폐를 만든다면 금의 실제가치보다 더
큰 금액의 화폐를 만들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화폐를 새로 찍어낼때마다 일정한 비율로 수입을 올릴수
있게 된다.

전통사회에서는 군주가 바로 정부를 의미했으며 군주는 화폐를
찍어낼수 있는 특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화폐주조의 특권에서 나오는 이득을 " Seignorage "라는 말로
부르는데, 군주 혹은 영주를 의미하는 단어 " Seignor "에서 파생된
용어이다.

화폐발행에서 생기는 이득은 결국 액면과 생산비용 사이의 차이에서
생긴다고 할수있다.

현대사회에서 통용되는 지폐의 경우에는 그것을 찍어내는데 드는 비용이
거의 0에 가깝다.

그러므로 화폐를 발행하는 정부가 이를 통해 얻을수 있는 이득, 즉 재정
수입은 금속화폐의 시대보다 한층 더 커졌다고 할수있다.

만약 세계 어느나라에서나 통용될수 있는 화폐를 찍어낼수 있는 나라
라면 국내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를 찍어내는 경우보다 훨씬 더 큰이득을
얻을수 있을 것이다.

2차대전전에는 영국,그리고 그후에는 미국이 바로 그와같은 지위를
누려왔다.

전후의 국제금융질서에서 미국의 달러화는 소위 기축통화라 하여
거의 세계공통화폐에 가까운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에따라 미국은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발권국으로서 상당한 이득을
누릴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 해마다 엄청난 국제수지의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별 탈없이 나라
살림을 꾸려나갈수 있는 것이 그 이득의 단적인 예다.

다른나라 같으면 해마다 몇백억달러에 달하는 적자를 내면서 단 몇년
이라도 버틸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제수지에 적자가 나면 보유하던 외환이나 금으로 결제하든가,아니면
그만큼을 다른 나라로부터 꾸어서 결제할수밖에 없다.

외환이나 금을 산처럼 쌓아놓고 있는 나라는 없을 뿐더러 다른나라로부터
무한정 돈을 빌릴수 있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달러가 세계에서 통용되는 화폐의 역할을 하는 한 미국은 계속
달러를 찍어내어 국제수지의 적자를 결제할수 있다.

미국의 적자가 너무많이 누적되면 달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다른나라
사람들은 이를 받으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되면 달러는 더이상 세계화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며
발권국으로서의 이득도 없어지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