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 미/유럽/일본 엔지니어링산업 역사와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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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링산업의 역사는 1백년가량 된다.
19세기가 끝날무렵 미국서 나타나 10년쯤후에 유럽으로 전파됐고 일본
에는 다시 20년가량후에 상륙했다.
이들 지역의 엔지니어링기업활동을 살펴본다.
>>>> 미국 <<<<
엔지니어링산업은 대륙횡단철도 확장공사들을 배경으로 1898년에
벡텔사가 건설업으로 시작했고 1901년에는 화학기계 메이커로서
켈로그사가 설립되었다.
그후 1차세계대전으로 화학제품의 수요가 급증하여 석유제품에대한
석유정제공장 건설붐이 일어나 석유회사 화학회사 화학기계 메이커등이
엔지니어링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그시장도 확대하여갔다.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석유정제공장 건설붐으로 건설업으로 출발한 기업이 이분야에 참가하는
엔지니어링 기업도 탄생되었다.
벡텔사와 같이 건설업으로 출발한 플로어사도 20년대에는 정유소건설업
에 참여했다.
원유열분해방식의 개발에 참여한 켈로그사,화학메이커에서 공장건설을
목표로 한 러머스사 그밖에 오늘날 엔지니어링산업에 군림하는 거대회사
의 대부분이 30년대까지 탄생했다.
엔지니어링산업의 기반이 조성된 미국은 2차세계대전으로 도약기를
맞아 켈로그사는 맨해턴계획(원자폭탄제조계획)에 협력,당시의 돈으로
5억달러라고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수행에 중심적 역할을 완수할
정도로 성장했다.
건설업에 진출했던 벡텔사도 정유소 화학공장건설및 석유화학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여 파이프라인건설및 비철금속정련공장건설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처리할 정도로 자랐다.
2차대전이후 미국 엔지니어링산업은 국제화를 내딛게 되었다. 유럽
원조에 미국 기업들이 진출하게 된 것이 계기이다.
켈로그사가 영국에 진출한것을 교두보로 러머스 포스터 필러 플로어
벡텔사가 잇따라 유럽에 거점을 마련하고 정유소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유럽진출을 계기로 미국 엔지니어링산업은 60년대를 전후로 석유정제
플랜트시장외에 석유화학플랜트라는 거대한 시장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이시기에 미국의 대형 화학기업도 플랜트엔지니어링을 자사의 공무부문
에서 외부의 엔지니어링 기업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바꾸어갔기 때문에
석유화학플랜트엔지니어링은 본격적인 시장으로 커지게되었다.
또 미국의 엔지니어링산업은 자동차의 보급확대에따른 정유소신.증설붐
나아가서는 오이스타크리크원자력발전소의 우수한 경제성이 도화선이
된 원자력발전플랜트 시장의 대두등으로 일거에 거대한 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중동산유국들이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건설프로젝트를 수행,그대부분을
미국계엔지니어링회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그이후 개발도상국의 플랜트
건설을 도맡게 되었다.
>>>> 유럽 <<<<
엔지니어링업은 일찍부터 존재하고있었어도 본격적인 기업의 탄생은
2차대전이후 미국의 하청업무를 통해서 본격적인 엔지니어링 기능을
배워 익히게 되고나서부터이다.
60년대에 들어서 정유소건설붐이 일어났지만 엔지니어링의 업무는
여전히 미국계 엔지니어링기업이었고 유럽측은 정유소에 관한한
주도권을 빼앗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유화학플랜트에 있어 주로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생산에서
우수한 엔지니어링 기능을 발휘하기시작했다.
이시기에 겨우 실력이 붙게된 엔지니어링기업은 냉전의 와중에서
미국계가 발붙일수 없었던 구소련 동구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엔지니어링시장을 개척하고 왕성한 플랜트 수출을 시작했다.
오늘날 이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이미 이무렵부터 구축하였다.
70년대 북해에서의 석유 천연가스 개발에 수반되는 석유화학과 천연가스
화학프로젝트 나아가서 파이프라인관련 시설 프로젝트시장이 점차로
다양화되어 유럽의 엔지니어링산업도 비약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 일본 <<<<
1차대전까지는 엔지니어링사업의 대상이 될수있는 화학공장과 정유소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었지만 엔지니어링사업 담당자인 엔지니어링기업은
아직 성립되지 않았다.
30년대에 들어서 석유제품의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오늘날의 대형
전업엔지니어링 기업인 일본휘발유(현 일휘)및 일립조선 화공기제소
(삼릉화공기)등이 설립되었다.
2차대전후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사업의 담당자를 목표로하여 지요다
화공건설이 삼릉석유의 공사부문에서 독립형태로 발족했고 또 이미
설립된 일본휘발유(JGC)도 석유제품 제조판매사업으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본격적인 엔지니어링 회사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 석유화학산업의 활황으로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업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외국기술에 의존했기때문에 프로세스 설계와 기본설계도 해외의
라이선스사에 맡기게 되었지만 점차 힘을 얻게된 기계산업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상세설계 이후를 일본업체가 맡게 되었다.
60년대 들어 화학비료 플랜트 엔지니어링사업을 목표로 도요엔지니어링
이 설립되어 전업 대형3사의 하나로까지 성장하게되었다.
일본의 엔지니어링산업의 도약기는 75년이후 10년간이었다. 그 원동력은
플랜트 수출이었다.
74년에 38억5천8백만달러였던 플랜트 수출액이 75년에 52억4천1백만달러,
76년에 80억6백만달러로 급증하여 81년에는 1백74억5천9백만달러로 겨우
6년만에 3.3배가 증가하였다.
계속된 원유가격의 인상으로 외화수입을 얻은 산유국들과 사회주의국가들
의 플랜트 건설붐이 그원인이었다.
일본의 전업 엔지니어링 3사의 최근 활동상을 보면 지요다가 올 1분기
매출액이 3천5백60엔을 기록했다.
수주면에서 특기할만한 프로젝트는 카타르LNG플랜트이다. 이에 힘입어
수주실적은 4천4백38억엔으로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일본국내에서는 경유심도탈황플랜트및 직접탈황플랜트등의 수주가
순조롭게 진행되고있다.
올해 해외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정유소건설 프로젝트, 중동에서는
LNG플랜트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하고있다.
도요엔지니어링은 올 1분기 매출액이 1천3백37억엔이었다.
수주면에서 보면 기존전문분야인 석유화학관련 설비투자가 감소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의 실적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호주에서 극동석유와
계약을 체결했다.
전문분야인 석유화학분야의 설비투자가 위축되어 석유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시키고있다.
현재 해외프로젝트의 경우 56%의 기자재를 해외로부터 조달하고있으며
앞으로 10~15%정도 높일 계획이다.
내년도 1분기 수주목표는 2천억엔으로 이가운데 국내분은 6백억엔이다.
JGC의 올1분기 매출액은 3천3백74억엔이다.
일반산업분야가 불황에 처해있는 가운데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로
가장 많은 이익을 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좋은 조건으로 수주한 프로젝트의 수행중에 경기가 하락하여 기자재를
값싸게 구매할수있었던 것이 고수익을 기록할수있었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해에는 동남아시아지역의 석유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는 의약품제조플랜트같은 분야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정용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
19세기가 끝날무렵 미국서 나타나 10년쯤후에 유럽으로 전파됐고 일본
에는 다시 20년가량후에 상륙했다.
이들 지역의 엔지니어링기업활동을 살펴본다.
>>>> 미국 <<<<
엔지니어링산업은 대륙횡단철도 확장공사들을 배경으로 1898년에
벡텔사가 건설업으로 시작했고 1901년에는 화학기계 메이커로서
켈로그사가 설립되었다.
그후 1차세계대전으로 화학제품의 수요가 급증하여 석유제품에대한
석유정제공장 건설붐이 일어나 석유회사 화학회사 화학기계 메이커등이
엔지니어링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그시장도 확대하여갔다.
세계 최초의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석유정제공장 건설붐으로 건설업으로 출발한 기업이 이분야에 참가하는
엔지니어링 기업도 탄생되었다.
벡텔사와 같이 건설업으로 출발한 플로어사도 20년대에는 정유소건설업
에 참여했다.
원유열분해방식의 개발에 참여한 켈로그사,화학메이커에서 공장건설을
목표로 한 러머스사 그밖에 오늘날 엔지니어링산업에 군림하는 거대회사
의 대부분이 30년대까지 탄생했다.
엔지니어링산업의 기반이 조성된 미국은 2차세계대전으로 도약기를
맞아 켈로그사는 맨해턴계획(원자폭탄제조계획)에 협력,당시의 돈으로
5억달러라고하는 거대한 프로젝트 수행에 중심적 역할을 완수할
정도로 성장했다.
건설업에 진출했던 벡텔사도 정유소 화학공장건설및 석유화학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여 파이프라인건설및 비철금속정련공장건설등의 대형
프로젝트를 처리할 정도로 자랐다.
2차대전이후 미국 엔지니어링산업은 국제화를 내딛게 되었다. 유럽
원조에 미국 기업들이 진출하게 된 것이 계기이다.
켈로그사가 영국에 진출한것을 교두보로 러머스 포스터 필러 플로어
벡텔사가 잇따라 유럽에 거점을 마련하고 정유소건설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유럽진출을 계기로 미국 엔지니어링산업은 60년대를 전후로 석유정제
플랜트시장외에 석유화학플랜트라는 거대한 시장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이시기에 미국의 대형 화학기업도 플랜트엔지니어링을 자사의 공무부문
에서 외부의 엔지니어링 기업을 이용하는 방향으로 바꾸어갔기 때문에
석유화학플랜트엔지니어링은 본격적인 시장으로 커지게되었다.
또 미국의 엔지니어링산업은 자동차의 보급확대에따른 정유소신.증설붐
나아가서는 오이스타크리크원자력발전소의 우수한 경제성이 도화선이
된 원자력발전플랜트 시장의 대두등으로 일거에 거대한 산업의 하나가
되었다.
중동산유국들이 막대한 석유수입으로 건설프로젝트를 수행,그대부분을
미국계엔지니어링회사가 담당하게 되었고 그이후 개발도상국의 플랜트
건설을 도맡게 되었다.
>>>> 유럽 <<<<
엔지니어링업은 일찍부터 존재하고있었어도 본격적인 기업의 탄생은
2차대전이후 미국의 하청업무를 통해서 본격적인 엔지니어링 기능을
배워 익히게 되고나서부터이다.
60년대에 들어서 정유소건설붐이 일어났지만 엔지니어링의 업무는
여전히 미국계 엔지니어링기업이었고 유럽측은 정유소에 관한한
주도권을 빼앗을수가 없었다.
그러나 석유화학플랜트에 있어 주로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 생산에서
우수한 엔지니어링 기능을 발휘하기시작했다.
이시기에 겨우 실력이 붙게된 엔지니어링기업은 냉전의 와중에서
미국계가 발붙일수 없었던 구소련 동구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엔지니어링시장을 개척하고 왕성한 플랜트 수출을 시작했다.
오늘날 이지역에서의 주도권을 이미 이무렵부터 구축하였다.
70년대 북해에서의 석유 천연가스 개발에 수반되는 석유화학과 천연가스
화학프로젝트 나아가서 파이프라인관련 시설 프로젝트시장이 점차로
다양화되어 유럽의 엔지니어링산업도 비약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 일본 <<<<
1차대전까지는 엔지니어링사업의 대상이 될수있는 화학공장과 정유소가
계속해서 생기고 있었지만 엔지니어링사업 담당자인 엔지니어링기업은
아직 성립되지 않았다.
30년대에 들어서 석유제품의 제조판매를 목적으로 오늘날의 대형
전업엔지니어링 기업인 일본휘발유(현 일휘)및 일립조선 화공기제소
(삼릉화공기)등이 설립되었다.
2차대전후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사업의 담당자를 목표로하여 지요다
화공건설이 삼릉석유의 공사부문에서 독립형태로 발족했고 또 이미
설립된 일본휘발유(JGC)도 석유제품 제조판매사업으로의 진출을
단념하고 본격적인 엔지니어링 회사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50년대 후반 석유화학산업의 활황으로 본격적인 엔지니어링업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외국기술에 의존했기때문에 프로세스 설계와 기본설계도 해외의
라이선스사에 맡기게 되었지만 점차 힘을 얻게된 기계산업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상세설계 이후를 일본업체가 맡게 되었다.
60년대 들어 화학비료 플랜트 엔지니어링사업을 목표로 도요엔지니어링
이 설립되어 전업 대형3사의 하나로까지 성장하게되었다.
일본의 엔지니어링산업의 도약기는 75년이후 10년간이었다. 그 원동력은
플랜트 수출이었다.
74년에 38억5천8백만달러였던 플랜트 수출액이 75년에 52억4천1백만달러,
76년에 80억6백만달러로 급증하여 81년에는 1백74억5천9백만달러로 겨우
6년만에 3.3배가 증가하였다.
계속된 원유가격의 인상으로 외화수입을 얻은 산유국들과 사회주의국가들
의 플랜트 건설붐이 그원인이었다.
일본의 전업 엔지니어링 3사의 최근 활동상을 보면 지요다가 올 1분기
매출액이 3천5백60엔을 기록했다.
수주면에서 특기할만한 프로젝트는 카타르LNG플랜트이다. 이에 힘입어
수주실적은 4천4백38억엔으로 목표를 거의 달성했다.
일본국내에서는 경유심도탈황플랜트및 직접탈황플랜트등의 수주가
순조롭게 진행되고있다.
올해 해외에서는 동남아시아의 정유소건설 프로젝트, 중동에서는
LNG플랜트건설 프로젝트 수주를 목표로 하고있다.
도요엔지니어링은 올 1분기 매출액이 1천3백37억엔이었다.
수주면에서 보면 기존전문분야인 석유화학관련 설비투자가 감소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의 실적을 계기로 인도네시아 호주에서 극동석유와
계약을 체결했다.
전문분야인 석유화학분야의 설비투자가 위축되어 석유분야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시키고있다.
현재 해외프로젝트의 경우 56%의 기자재를 해외로부터 조달하고있으며
앞으로 10~15%정도 높일 계획이다.
내년도 1분기 수주목표는 2천억엔으로 이가운데 국내분은 6백억엔이다.
JGC의 올1분기 매출액은 3천3백74억엔이다.
일반산업분야가 불황에 처해있는 가운데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의 하나로
가장 많은 이익을 냈다는 사실은 특기할만한 일이다.
좋은 조건으로 수주한 프로젝트의 수행중에 경기가 하락하여 기자재를
값싸게 구매할수있었던 것이 고수익을 기록할수있었던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올해에는 동남아시아지역의 석유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수주활동을 벌이고
있다. 앞으로는 의약품제조플랜트같은 분야에도 진출할 방침이다.
<정용배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