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88년 미버클리대에서 "공리주의의 현대적 재해석"이란 박사논문을
쓸때 존 하르사니교수의 지도를 직접 받았었다.

당시 프랑스 출신의 제랄드 드브뤼교수(8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대표
지도교수였고 하르사니교수는 2명의 지도교수중 한사람이었다.

내가 박사논문을 준비하던 5년간의 하르사니교수에 대한 강한 인상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우선 그의 첫인상은 꽤나 고집스러워 보인다. 백발의 머리에 학자로서의
대쪽 같은 인상이 역력하다. 그만큼 학문적인 토론에선 절대 양보가 없었다.

그의 성격은 어떨때는 괴팍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의 집엔 가구가 거의
없다. 취미라고는 공부뿐이어서 집안엔 오직 책상과 연구서적들로 가득
차있을 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친구도 적었고 따르는 제자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그의 이런 성격은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인들과 제대로 어울리지
못했던 탓으로 이해되곤 했다.

그런 탓에 학문적으론 중요한 업적을 냈지만 교수그룹의 주류에선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학생들에겐 언제나 친절한 그였다.

자기이론이나 주장에 대해선 조금도 양보를 하지않는등 학문적 집착이
대단한 양반었지만 학생들에게는 늘 관대했다.

한번은 내가 논문지도를 받기위해 버클리 언덕에 있는 그의 집에
찾아가기로 했다가 약속시간을 30분이나 어겼는데도 늦은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자 넉넉한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또 시험때나 강의중에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어느교수보다도
성심성의껐 설명해주곤 했다.

또하나 그에 대한 기억은 그가 강의보다 연구에 치중하는 연구교수였다는
점이다.

1년내내 한강좌정도만 맡을 정도로 강의는 자제하면서 주로 집이나
연구실에서 연구에 열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