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21세기의 일본 위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가. 과연 국제 무대에서
경제대국에 어울리는 정치적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다.

이들은 일본이 그동안 쌓아올린 경제력이 정치적인 영향력을 "구입"할수
있을 만큼 충분하다는 식으로 풀이한다.

여기에 일본 정치권내에서도 이제 죄값을 치를만큼 치렀으니 정치적
약소국의 입장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다는 주장이 득세, 정치
군사적인 대국화를 지향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지난달 3일에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 집권당의 "얼굴마담"격인 사회당이 대변신을 선언한 것이다.

사회당은 이날 열린 임시전당대회에서 "자위대는 헌법의 테두리내에
있다"고 말해 창당이래 일관되게 지켜온 자위대의 위헌주장을 철회했다.

사회당은 또 냉전종결후의 미.일 역할증대및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미.일안보조약을 유지해 나가기로 했으며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도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고 천명,당의 기본노선을 수정했다.

사회당의 이같은 변신은 정권유지를 위한 한 방편이었으나 시각을
달리하면 정치대국을 지향하는 일본내 분위기변화가 반영된 것이었다.

평화헌법의 테두리내에서 "작은 일본"을 지향하는 세력이 또하나 자취를
감췄으며 결과적으로 이는 일본의 정치 군사 대국화를 추진중인 세력의
득세가 확실해졌음을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일본이 정치대국화를 위해 쏟는 노력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로 집약된다.

지난해 유엔총회에서 상임이사국 진출 교두보를 마련하려는 계획은 비록
물거품이 돼버렸지만 지난달 27일 고노 요헤이 일본 외상이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상임이사국 진출의사를 천명함으로써 일본의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일본의 이러한 진출희망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아 일본의 바람대로 될것이 확실시된다.

또 유엔이 벌이고 있는 각종 사업도 일본의 자금지원을 받지 않고서는
차질을 빚을수 밖에 없는 현실이어서 주변 여건은 일본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대국화시도는 자위대를 통해서도 한 단면을 엿볼수 있다.

일본은 지난 90년 걸프전을 계기로 해외파병의 길을 열었는데 이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경찰"의 일원으로 국제정치무대에서의 영향력을
키워가려 하고 있다.

군사적인 면에서 일본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가. 핵탄두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라 해도 틀리지 않다. 이는 걸프전에서도 여실히 증명됐다.

재래식 무기는 비록 "메이드 인 아메리카"라는 표식을 달고 있기는 해도
원산지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면 이는 일본제 무기라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다.

이러한 무기들의 핵심기술이 일본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군사적인
면에서 일본의 위력은 가공할만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은 급하지 않았다. 주변국들의 반발을
예상한듯 거북이 걸음을 걸어왔다.

지난 80년대 방위비지출을 총예산의 1% 밑으로 억제한다는 방침이 어느
순간엔가 무너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의 군사력이 주변국을 위협
하는 요소로까지 떠오르는 실정이다.

재래식 군사력과는 별도로 핵무기 부문에서 주변국들이 느끼는 위협도
작지 않다.

일본의 핵개발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플루토늄등 핵물질을 보유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지난 5월 "도카이 무라" 핵연료공장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신고되지 않은 플루토늄 70 이 발견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어 지난 8월 공개된 일본 외무성의 극비문서는 일본이 오래전부터
핵무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줘 일본의 신뢰성은 또 한차례
타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전략무기 체계는 이미 미국 유럽
수준을 따라잡았다.

유사시 대륙간 탄도탄 운반체로 전용할수 있는 로켓기술을 확보,일본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최강의 군사대국으로 탈바꿈할 준비를 끝냈다.

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전 후유증을 극복,반세기도 채 되지 않아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을 건설한 일본.21세기에 그 일본의 위상은 지금과 크게
달라져 국제 정치무대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명실상부한 강대국
의 대열에 올라설 전망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핵무장을 통한 군사강대국의 길을
걷는 무리수를 던질 것 같지는 않다.

< 김현일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