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요일로 불리는 루블화 대폭락 사태가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기업들
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미국 일본등 외국기업들마다 루블화 가치가 하룻새(11일) 무려 8백45루블
(21.5%)이나 폭락하자 대러시아 투자를 전면 중단할 것인지 아니면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인지를 놓고 묘안 찾기에 부심하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무리 루블화를 많이 벌어들여 봤자 달러화로 환산하면 종잇장에
불과한 실정인데다 그렇다고 무작정 발을 뺄수도 없는 처지여서 진퇴양난의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들어 외국기업들이 러시아에서 루블화로 벌어들인 이익은 미달러화로
환산할 경우 지난 1월의 환율에 비해 절반에도 못미치는 엄청난 환차손을
입었다.

그러나 장기적 관점에서 볼때 러시아가 갖고 있는 잠재적 매력은 결코
무시할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어 루블화 폭락은 간단한 수식계산만으로
는 풀수 없는 난제가 되고있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처방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섣불리 발을 빼는 것보다는 속도를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물론 후퇴를 애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러시아정부 경제고문이었던 미하버드대의 제프리 삭스교수는 "러시아에
대한 외국기업들의 투자는 러시아 국내상황이 호전될 것이라는 믿음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루블화 폭락사태와 물가불안, 고금리등 예상치 못했던
불확실성은 외국기업들의 러시아 진출을 재고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삭스 교수는 "일부 기업들 가운데는 장기적 이익을 위해 현재의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돼있는 경우도 있지만 투자 성격상 러시아의 안정을 필요로
하고 있는 기업들은 후퇴가 불가피 하다"고 말한다.

구소련과 관련된 미기업들의 합작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는 미무역개발처
(TDA)의 댄 스타인도 "루블화의 지속적인 하락은 러시아에 진출해 있는
미제조업체들에게 막대한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경영진들의 신규 프로젝트 추진에도 상당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최근의 루블화 사태가 외국기업들의 러시아진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한마디로 단언할수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프로젝트에 따라 혹은 기업에 따라 판단이 다를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러시아 투자기업들에 대한 자문역할을 해주고 있는 미국의 존 모튼 같은
변호사는 최근의 루블화 폭락이라는 단기적 리스크는 외국기업들의 장기적
투자전략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는 기술과 마케팅등 몇가지 측면에서 엄청난 투자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다. 미래의 투자가치를 고려할때 단기적 비용상실은 그리 값비싼
대가는 아니다"라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러나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촉발시킨 근본적 원인이
제거될때까지 러시아에 대한 투자는 예측불허의 위험요인을 안고 있어
신중한 접근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발은 들여 놓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제트엔진 메이커인 프랫&휘트니사등 러시아 진출을 원하는 미기업들에
대해 70여종의 투자 타당성 조사를 지원해 줬다는 미무역개발국도 대부분의
미기업들은 최근의 러시아 사태에 대해 성급한 판단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한다.

사태를 주시하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일을 진행 시킨다는 얘기다.

< 김병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