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동천 <인하대 무역학과 교수> ]]]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국가들은 80년대 중반부터 대외지향적 성장정책을
채택한 이래 빠른 경제성장과 무역의 증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임금상승등으로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동북아의 일본과 한국
대만등으로부터 노동집약산업을 이어받아 공산품의 수출을 늘리면서
아시아.태평양 지역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아세안의 이런 변화에 대해 한국의 일부에서는 경계와 우려의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즉 이들이 빠른 속도로 추격해 오면 한국의 산업은 많은 부문에서 경쟁력을
잃고 수출시장도 잠식당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시각은 동전의 한면만 보는 것이다.

아세안의 노동집약재 수출의 증가가 미국을 비롯한 제3국 시장에서 우리
시장을 잠식한다는 의미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세안은 그 풍부한 천연자원등 생산요소의 부존조건이 우리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비경쟁적 무역이 주종을 이루어 경쟁관계보다는
"보완관계"가 더 뚜렸하다.

또한 아세안의 성장은 우리에게 새로운 수출기회를 창출해 주기도 한다.

특히 그들이 급성장하는 수출부문에서 필요한 중간재와 이제 우리의
동태적 비교우위부문으로 수출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유연한 산업구조조정
을 촉진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런 관점에서 아세안에 대한 수출의 추이를 살펴보면 아세안이 변신을
시작한 지난 86년에 한국의 수출은 13억달러로 총수출의 4%에도 못미쳤다.

그러나 93년에는 93억달러로 그 비중은 11%를 상회하고 유럽연합과 대등한
비중으로 높아졌다.

세계총수입에서 아세안의 비중이 5%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한국수출에서
아세안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게 높은 것이며 그만큼 긴밀한 관계가 형성
되고 있다고 보여진다.

한편 전통적으로 주요한 수출시장인 미국은 그 기간중 40%라는 압도적
비중에서 22%로 낮아져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대외경제관계에서 아세안의 중요성은 비단 수출과 투자의 대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세안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아.태지역의 경제질서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태지역에서는 그동안 시장경제의 자연스런 흐름에 의해 시장통합이
상당히 진척됐지만 이런 움직임을 제도적으로 강화한다는 취지에서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를 결성하고 경제협력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APEC은 다양하고 이질적인 구성국들 때문에 진로나 역할이 아직도
불확실하고 불안정적이다.

미국은 최근 아시아시장의 중요성과 세계적인 블럭화현상을 의식해 APEC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아.태지역의 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공식기구로 강화
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경제력의 상대적 약화와 공격적 통상정책 때문에 과거 미국이
국제기구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지도력을 행사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또한 경제대국인 일본은 미.일경제관계의 불협화와 국내정치체제의 불안정
등으로 강력하고 일관성있는 대APEC정책을 추진하지 못하고 극히 수동적인
자세만 보이고 있다.

이같이 구심점과 지도력이 결여된 APEC에서 아세안은 그 한 축을 차지하고
그들의 경제적 비중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APEC의 출현 초기에는 아세안이 흡수, 와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참여를 주저했다.

그러나 이제는 적극 참여하면서 동아시아 경제협의체(EAEC), 아세안 지유
무역지대(AFTA)등의 제안을 통해 협상능력을 높히면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은 아세안이라는 지역협력체를 운영하면서 또 주요선진국과의 정기적
대화를 통해 축적한 경험과 외교역량을 활용해 개도국의 개방정책을 지원할
수 있는 지역경제질서를 구축하고자 한다.

더우기 베트남을 비롯한 인도지나 3국이 조만간 아세안에 가입하면 그들의
위상은 더욱 강화될 것이 예상된다.

그동안 한국의 경제외교는 경제현실과 안보현실을 반영하여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과의 관계에만 주력해 왔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일련의 변화는 아세안과 같은 중위권 국가들과의
동반자적 협력관계가 중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물론 아세안시각의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또한 강대국 위주의 기본 틀에서 벗어나는 시각의 대전환도 아울러
요청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