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완규 <서울대 명예교수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가끔 대학이나 출연연구소 민간연구소가 "세계최초발견" "세계최초개발"
혹은 "세계제일"이라하여 그들의 연구결과를 지면을통해 보도하는 예를
본다.

그중 실제로 세계최초의 발견인것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실증되지 않은
것들이다.

지난날 아직도 후진국 대열에서 벗어나지 못했을때,정부는 경제부흥의
근간이 될 과학기술을 진흥하는데 힘써왔다.

정부는 과학기술계 연구소를 설립하고 국내외에서 유능한 학자들을
유치했다.

연구환경이 미처 조성되기전 정부나 산업체는 성급하게 연구성과를
요구했다.

이런 분위기는 연구자에게 큰 압력으로 작용했고 무엇이든 결과를 내놓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연구자나 연구소는 별것이 아닌 성과라도 이를 과정했고 더 나아
가서는 "세계최초"로까지 둔갑시키기도했다.

까닭을 모르는 집권층은 이에 흡족했고 정부의 성과로 치부했다.

정권유지차원뿐 아니라 국위선양의 좋은 보기로 활용할수가 있었던
것이다.
또 초조한 연구자는 검증되지 않거나 확인되지않은 연구결과를 부풀려
홍보하여 자기과시욕을 충족시켰다.

이처럼 과장되거나 불분명한 연구결과가 세계제일,세계최초발견등으로
오보되는 경우 정책입안자가 정책을 다루는데 있어 혼란을 겪을뿐 아니라
산업체들에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세계최초발견"인 업적을 관련 학회나 학자들에게 소개하지 않고
언론에 홍보하는 경우,그리고 그것이 실제와 다를 경우 그 학자는
학계로부터 신뢰를 잃게되고 많은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이 된다.

학문연구가 창의적인 능력에 상당히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같은 능력은 연구환경과 분위기가 갖추어질 때 발현되며 그런 환경이나
분위기는 적절한 연구개발투자에서 조성되는 것이다.

연구자의 역량이 비범하더라도 투자의 절대액수가 적정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세계최초나 최고가 그처럼 흔하게 나올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과학기술업적을 과장해서 선전하는 까닭에 경쟁국들이
우리의 역량을 실제이상으로 과대 평가하고 따라서 그들과 교류하는데
있어서 곤혹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우리나라에 나와있는 여러 선진국대사관에는 으레 과학기술참사관이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의 과학.기술관련정보를 수집하고 과학.기술계의
여러분야 활동내용을 평가 분석하는 일을 맡고 있다.

이들은 비교적 높은 수준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있어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의 역량을 높게 평가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실제로 여러 분야의 학회들이 발표하는 연구결과수준이 어느 정도인가는
그 분야 전문인들이 잘 알고 있다.

국제과학학술지에 발표되는 우리의 논문수가 일본의 10분의 1도
되지 않아 한탄하고 있는 처지에서,또 국제특허건수가 국제적으로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희소한 형편에서 "세계최초"가 그렇게 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스위스의 어느 단체가 매겨놓은 우리나라 국제경쟁력이 40여개국
가운데 30등에 가까운 위치에 있다는 것이 결코 우연한 것은 아니다.

수년전부터 과학재단에서 수여하는 국제수준급 "과학상"의 수상자가
첫해에 배출된이후 5~6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후보자조차 나오지
않고 있는 사실도 우리 과학수준의 국제적 위치를 보여주는 예가
된다.

신문에 흔히 보도되는 "세계최초"의 발견은 학술적으로 검증되어야
하고 그것이 기술과 관련된 것이면 먼저 국제특허를 얻어야 한다.

실제로 세계최초의 기술을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과대하게 홍보하는
것은 경쟁국에 경계심을 부추기는 것이 된다.

한참 뒤져있다가 우리보다 앞서가게 된 대만이 설치지도 않고 과장하지도
않으며 실상을 노출시키지 않은채 실속을 차리고 있는 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