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라크가 병력을 쿠웨이트국경으로 이동, 걸프전의 재연이 우려되고
있으나 유가는 오히려 하락하는 이상현상을 보였다.
지난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은 국제유가의 폭등을 가져왔다.
이당시 국제유가는 배럴당 40달러까지 폭등, 침공전보다 2배이상으로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걸프지역에 다시금 긴장이 감돌고 있는데도 유가는 예상과
달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인 7일.
이라크군의 쿠웨이트국경 이동 소식이 들린 이날 오전 런던석유시장에서
브렌트유(최근월물기준)는 순식간에 전날보다 35센트 오른 배럴당
17.32달러를 나타냈다.
뉴욕시장에서도 WTI(서부텍사스중질유)는 장중 한때 45센트가 올라 배럴당
18.70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같은날 오후 이라크가 실제로 쿠웨이트 국경을 다시 넘어서는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유가의 상승세는
멈추고 오히려 하락세로 돌아섰다.
브렌트유는 전날보다 배럴당 4센트 떨어진 16.93달러에서,WTI는 전일대비
겨우 1센트 오른 18.26달러에서 거래를 마쳤다.
주말을 지나 거래가 다시 시작된 10일 일부 이라크병력이 철수를 개시했다
는 소식을 접한 원유시장은 완전히 "팔자"세로 돌아섰다.
유가는 당연히 하락, 브렌트유는 29센트가 떨어져 열흘만의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같은 유가하락은 미국이 여전히 걸프지역에 병력을 증파, 전운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더구나 쿠웨이트정부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 젊은 근로자들에게 긴급
소집령을 내리고 있다는 보도가 연이어 전광판을 때리고 있을 때였다.
10일 이후 유가는 내림세를 지속, 13일 브렌트유와 WTI의 종가는 각각
15.85달러와 17.13달러.
국제원유시장이 이같은 걸프만의 긴장고조에도 끄떡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
일까.
사우디아라비아등 주변 산유국의 넉넉한 원유보유량때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지난 걸프전후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즉각 원유증산에 들어가 국제유가를
전쟁전수준까지 떨어뜨렸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란이 생산하는 원유량은 하루에
1천3백70만배럴정도.
그러나 이국가들은 하루 산유량보다 2백만배럴정도 많은 비축분을 보유하고
있다.
더구나 내년이면 원유생산확충공사가 완료돼 일일생산량은 훨씬 더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따라서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급등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중동위기는 국제원유시장에 당분간 심리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는 지난 91년부터 지속되고 있는 유엔의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이번
일을 벌인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그런데 이 사태로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의 해제시기가 오히려 뒤로
미뤄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전에는 95년께 금수조치가 풀릴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96년후반에야 풀릴것 같다"고 살로먼 브라더스의 고든 그레이분석가
는 말한다.
세계경기회복으로 내년의 유가상승을 점쳐온 이 회사는 이번일로 브렌트유
와 WTI의 내년 평균예상가를 지금보다 20%이상 높은 19.75달러와 21달러로
잡고 있다.
다른 유가분석기관들도 앞으로 유가가 상승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프랑스의 크레디리오네증권은 이라크사태와 관계없이 국제유가가 내년에
44%정도 오를 것으로 본다.
이회사는 동아시아국가들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원유수요 증가를
주된 이유로 들고있다.
홍콩의 자딘플레밍증권은 내년 유가가 8.5% 상승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
하면서도 개도국들의 중산층및 공업시설확대에 따라 원유소비량과 공급량간
의 갭이 점점 커질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같은 유가오름세는 특히 원유수입의존도가 80%에 이르는 아시아국가들의
경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다.
크레디리오네증권은 내년도 유가상승으로 한국 홍콩 싱가포르 대만등
소위 "아시아 4용"에서 인플레율이 1~2%포인트 더 높아질 것으로 예견한다.
자딘플레밍증권도 아시아국가들이 현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체
에너지개발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염정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