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는게 값"

국내 소프트웨어 시장을 지켜보면 절로 나오는 말이다.

10만원짜리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이 2~3만원에 판매되고 40만원대의
표계산 프로그램에 10만원 미만의 가격표가 붙어 있다.

밀수꾼들이 행하는 뒷거래가 아니다.

국내 대기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제작사와 유통회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그럴듯한 상품포장지에 붙어있는 정가와 실제 가격사이의 차이에 소비자들
은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이중가격체제는 정가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소프트웨어를 제값주고 사는 사람은 팔불출에 속한다"는 말도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고전이 되버렸다.

소프트웨어의 가격은 원칙적으로 개발비 직접재료비와 마진 그리고
소프트웨어의 특성으로 인한 사용자지원 경비등에 의해 결정된다.

제대로 된 소프트웨어는 특히 개발비와 사용자 지원비용이 대부분을 차지
한다.

그러나 지금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가격왜곡현상은 이같은
원칙을 무시한데서 비롯한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기껏 정상적으로 가격을 책정해 놓고도 어느새
직접재료비 정도를 보전하는 선까지 떨어진 가격표를 보고 개발의욕을
상실한다.

소프트웨어를 담는 디스켓값과 사용설명서 인쇄비 포장비정도에 약간의
유통경비만 보태진 상태에서 가격 파괴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소프트웨어 가격구조에서는 개발자의 노력이나 정보자산에 대한
가치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또 단 한명의 사용자에게라도 철저하게 사후 고객지원을 하겠다는 책임감도
엿볼 수 없다.

싼 맛에 소프트웨어를 산 소비자들은 슬며시 시장에서 사라져 버리고
고객에 대한 지원은 생각지도 않는 소프트웨어의 한탕주의에 분통을
터트린다.

일부 업체들은 소프트웨어도 제값을 받아야 할 때라며 내려오는 계단을
거꾸로 올라가는 유별난 가격파괴운동을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