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규 < 대한토목학회 회장 >

최근 발생한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비롯, 근래 몇년간 일어난 대형구조물
관련사고는 토목기술자를 비롯해 건설관계자들을 매우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런 불상사의 일차적인 책임은 분명히 그 구조물의 계획 조사 설계 시공
등을 담당한 기술자에게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사고가 날때마다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보다는 지엽적인 문제에만
매달리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모두가 이를 잊고마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같은 대형사고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기술적인 원인도 있으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망각하고 있는 점이 안타깝다.

근간에 부실공사를 근절하기위한 정부기관의 대책이 다양하게 발표되었고
그 중에는 제도화되어 실행에 옮겨진 것도 있으나 대체로 사고 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추궁과 규제및 감독강화로 마무리된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흔히들 지적하는 기술적인 원인은 시방서상의 오류 측량 또는 계산의
잘못으로 인한 설계하자 불량재료의 사용 시공상의 부실등을 들을수 있다.

감리문제나 사후감독 문제역시 기술적인 원인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나 이같은 기술적인 하자가 발생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의
잘못된 공사관행과 이를 부추긴 정부당국의 정책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30여년간 고도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이를 위해서는
고속도로등 각종 사회간접시설의 급속한 구축이 필요했다.

그러다보니 무엇을 건설하든지 "빠르고 적은 비용으로" 할수록 좋다는
생각이 일반화되어 버렸다.

경부고속도로가 바로 그와같은 대표적인 예에 속한다.

경부고속도로와 같은 대규모공사를 제대로 하려면 10년을 족히 걸리는게
상식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는 1년이라도 빨리 경제발전을 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였고 가능한 빨리 건설하는게 지상과제였다.

사후 보수비용은 당시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경부고속도로는 조기에 완공되고 국내 산업발전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완공후 10년동안 순공사비의 2배에 달하는 보수비용을 치러야만
했다.

일본의 도메이고속도로는 전체거리가 경부고속도로 보다도 짧지만 건설
기간은 경부고속도로의 3배, 공사비는 7배가 들었다.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이같은 즉흥적인 "빨리 해치우기식"공사는 그후
우리나라의 대규모 건축 토목공사에서 하나의 관행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부실공사를 양산하게된 근본적인 원인이 되어버렸다.

성수대교 붕괴사고의 원인도 바로 이같은 "빨리 싼값으로"라는 우리의
공사관행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나마 도로는 사후 파손등이 눈에 잘띄어 그때 그때 보수를 해왔지만
일반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교량은 부실화되는 것이 눈에 잘 보이지
않으니 그대로 방치된 결과 이같은 참사를 불러온 것이다.

신행주대교 팔당대교 사고 역시 정부의 무모한 "해치우기식"정책이 낳은
것이었다.

당시 정부는 2백만호 주택건설 사업에 모든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멘트 철근등 건자재 파동을 가져왔고 그 과정에서 부실
자재공급이 불가피했다.

오직 아파트 건설에만 정신이 팔린 정부는 다리공사쯤에는 별 관심도
없었고 다만 "언제까지 얼마를 들여 지으라"는 식이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지을때의 생각은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뀌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술자들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없었다.

외국에서는 훌륭한 대규모 공사를 무리없이 수행해 내는 건설업체들이
국내에서는 부실공사를 양산해 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다.

하루빨리 이같은 공사관행이 없어지지 않는한 대형 참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교량의 안전성에 관해서도 개선될 점은 물론 있다.

이미 보도를 통해서도 지적된 바 있지만 교량이 견딜수 있는 하중을
몇배 넘는 무거운 차량이 아무런 제재없이 다리를 드나드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통과하중내의 무게가 1만번 통과하는 것보다도 통과하중을 넘는 무게가
한번 지나는 것이 다리의 안전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힌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흔히들 외국의 다리는 견실하다고들 하지만 미국 LA에 있는 금문교도
우리나라 처럼 과적차량이 수시로 드나들면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튼튼한 다리를 건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적차량의 통행제한도 철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 기회에 지적하고 싶다.

또 한가지는 사후 관리와 관계된 것인데 현재 서울시의 사후 관리는 극히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다리는 건설방법이나 종류에 따라 각기 별도로 관리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 다리는 5년 또는 10년마다 점검을 해야 하는데 서울시는
"20년이상"이라는 형식적인 기준만을 정해놓고 20년미만의 다리는 아예
점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조사방법에 있어서도 정밀진단이 아닌 몇군데를 샘플링해 조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마치 직장에서 건강진단을 받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조사에서 정확히
부실여부를 찾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하나로 이같은 사고를 맞으면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고 면목이 없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분통이 터지는 것도 바로
이런 한심한 행정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또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는 근본적인
태도자체를 바꾸어야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올들어 정부가 잇따라 발표한 수많은 대형 국토개발사업도
사상누각이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도버해협을 가로지르는 유로터널이 나폴레옹 1세때부터 시작해 1백80년간의
조사 설계기간을 거쳐 올해서야 완공되었다는 점을 정부당국자들이 되새겨야
할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