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가 일을 저질러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하지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지? 선발대를 출발시켰다는게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선발대만 출발한게 아니라..."

"그럼?"

"일부 병력만 남고,모두 출진을 했습니다"

"무어라구?"

오쿠보는 어처구니가 없는 듯 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형님, 지금 와서 대만 정벌을 중지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이
됐지 뭡니까. 왜냐 하면..."

쓰구미치는 자기가 명령을 어기고 독단으로 정벌을 단행하기로 결심한
까닭을 차근차근, 그러나 다분히 과장해서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만 정벌은 일본의 현 난국을 타개하는데 결정적인 시책이어서 전국의
불만 사족들이 다 환영을 하는 터이며, 특히 가고시마에 낙향한 자기 형인
사이고 다카모리도 전적으로 지지를 하여 3백명의 용맹한 사족들을 차출해
주기까지 했는데, 이제 와서 중지를 한다면 그 비난이 어떠하겠느냐, 처음
부터 대만 정벌을 들고나오지 않은 것보다 열배 백배 더 정세가 험악해질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정벌을 중지하는 이유가 서양 여러 나라의 압력 때문이라고 하니,
분노가 그쪽으로 향해서 막부 말기의 양이운동 같은 상황이 다시 전국적으로
전개될지도 모르며, 실제로 부하 장병들 중에는 정벌 중지의 지시가
내려왔다는 사실을 알자, 그렇다면 대만 대신 이곳 나가사키에 있는
서양놈들부터 쓸어버리자는 논의를 하는 자가 적지 않아서 폭발 일보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판국이니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있습니까? 그들을 바다 밖으로
내보내 버릴 수밖에요"

쓰구미치의 말을 받아 오쿠마도,

"내 판단에도 도리가 없었어요"

하고 한마디 거들었다.

오쿠보는 말없이 술잔을 쭉 기울이고 나서 오쿠마에게 물었다.

"우리 힘만으로 정벌이 가능할까요?"

대뜸 쓰구미치가 대답했다.

"가능하고 말고요. 벌써 서양인들은 다 빠져나가고, 우리 군함 우리
군사만으로 당당히 출진을 했는데요 뭐. 형님, 이 쓰구미치에게 맡겨
주십시오. 제가 가서 멋지게 해내고 오겠습니다"

"도리가 없지. 좋아, 그렇게 하라구"

오쿠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권을 손아귀에 쥐고 온 오쿠보는 결국 대만 정벌을 강행쪽으로
처리하고, 서둘러 도쿄로 돌아갔다.

귀경 즉시 그는 대만 문제가 청나라와의 전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초대 청국공사로 내정된 야나기하라 사키미쓰를 급히 북경으로
파견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