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민자당이 25일 고위정책조정회의에서 마련한 시설물 부실시공방지와
안전관리를 위한 제도개선방안은 크게 두가지로 압축된다.

시설물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고 부실관련자에 대해서는 직위
고하를 막론, 엄중 문책토록 하며 예산의 뒷받침이 필요한 부문은 내년도
사업예산을 줄여서라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특별법제정에 대해 당정은 쉽게 의견일치를 봤다.

이번 성수대교 붕괴참사도 다리의 보수및 유지관리만 제대로 해왔더라면
충분히 막을수 있었다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부실방지를 위해 필요한 예산은 대폭 증액하고 부실시공 건설업체와 관련
기술자는 업계에서 절대로 살아남을수 없도록 해야 한다는데도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김종필대표를 비롯한 당측 참석자들 대부분은 이날 정부가 들고
나온 대책방안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대책의 상당부분이 사고가 터질때마다 정부가 서둘러 내놓은 "단골메뉴"라
그렇고 이 대책들이 제대로 실천될지에 대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당측은 무엇보다 정부측의 실천의지를 의심하는 분위기였다.

김영삼정부출범후 꾸준한 개혁작업을 추진해 오면서 성과가 적지않은
편이었는데 정부의 총체적인 복지부동으로 그동안의 "공든 탑"이 일거에
무너졌다는 시각이 은연중 내비치기도 했다.

회의에 지각한 김대표가 회의장에 들어서자마자 "다리위에서 시간
다보냈다"며 가시돋힌 말부터 꺼낸것과 문정수사무총장이 회의도중 "서울시
가 무슨 얘기를 해도 시민들은 믿지 않으려 할것"이라고 질책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수 있다.

당측은 회의에서 우선 정부가 최저가낙찰제를 현행대로 유지키로 한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문총장등은 "최저가낙찰제는 부실공사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으며 낙찰
가격중 실공사비에 들어가는 몫은 40% 정도뿐이고 나머지 60%는 다른 명목
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보완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불법하도급 근절에 대한 구체적 대책이 결여됐다는 질타성 발언도 나왔다.

"관계기관합동으로 불법하도급 실태조사를 강화하고는 있으나 해당 업체들
끼리 함구할 경우 혐의사실 입증이 어렵다"는 김우석건설부장관의 보고에
대해 서청원정무장관등은 "불법하도급 사실이 적발될 때는 업주에 대해
체형까지도 고려하라"고 요구했다.

이상득정책조정실장은 감리제도 강화방안과 관련, "국내감리업체들의
재정여건이 넉넉치 않은만큼 감리보증제도를 도입하는 문제를 적극 검토
해야 할것"이라며 "차제에 부실감리에 대해서는 반드시 문책이 뒤따른다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표는 "정부가 시설안전관리공단을 설립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작은 정부'' 방침에 역행하는것 아니냐"며 "하나의 기업이 전 시설물을
관리하는 것은 사실상 어려우니 시.군.구등 기초행정기관을 통해 관리할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특히 충주호 유람선화재사건에 대해서는 정부측이 전혀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자 이실장은 "성수대교 붕괴사고때와 마찬가지로 구조활동이 지연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고 지적, "재난신고체계를 전면 재검토하고 국민들이
재난신고를 할 경우 공식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당정은 이날회의에서 부실관련자에 대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문책키로 결론을 내렸으나 정작 이원종 전서울시장의 사법처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 김삼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