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적반하장이구려. 무단히 남의 영토를 침범해 놓고서 배상을
요구하다니, 그게 말이 되오?"

"무단히 침범한게 아니잖아요. 정당한 이유가 있어서이지. 그리고 생번은
청나라의 통치권 밖이라고 했으니, 영토를 침범한 것도 아니고요"

"헛헛허..."

이홍장은 어이가 없어서 그만 껄껄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청나라는 일본과 같은 작은 섬나라가 아니오. 아마도 일본의 수십배
가 되는 큰 대륙이라 그거요. 그래서 변방에는 통치권이 제대로 미치지 않는
지역도 있게 마련인 것이오. 그런 뜻으로 한 말을 영토가 아니라고 해석
하다니. 그리고 내가 이해할수 없는 것은 작년에 우리와 일본이 수호조약을
체결했는데, 그것도 일본측에서 원해서 된 일인데, 수호를 도모하기는 커녕
불과 일년후에 대만 침공이라니.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일본의 얼굴인가요?
아니면 일본의 얼굴은 공식적으로 두개라 그건가요?"

외무경이었다가 정한론 정변으로 사표를 내던지고 태정관에서 물러난
소에지마가 지난해 3월, 그러니까 물러나기 7개월전에 청나라에 전권대사로
가서 청일수호조약을 체결했었다.

그때 소에지마는 류큐인의 집단 피살사건에 대하여 청나라의 총서대신인
문상에게 책임을 물어 대만의 생번은 통치권 밖이라는 대답을 듣기도 했던
것이다.

일본의 얼굴은 두개냐는 말에 야나기하라는 낯이 약간 붉어지는 느낌
이었다.

그러나 아랫배에 발끈 힘을 주며 오기를 부리듯 대꾸했다.

"그렇다면 청나라는 입이 두갠 모양이죠? 한입으로는 대만의 생번은
통치권 밖이라고 했다가, 다른 입으로는 왜 우리 영토를 침범해서 생번을
토벌하느냐고 항의를 하고 나서니 말입니다"

"허허허..."

이홍장은 재미있다는 듯이 또 웃었다.

말재간이 제법인 걸 보니 젊지만 역시 외교관 소질이 있군 싶었던 것이다.

그처럼 서로 평행선을 달리니 얘기가 매듭지어질 까닭이 없었다.

결국 나이많은 이홍장이 피로하니 그만두자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회담은 끝났다.

북경으로 간 야나기하라는 총리아문(총리관서)의 몇몇 고위 인사와 교섭을
벌였으나 역시 비슷한 상황이어서 아무 결말도 짓지 못하고 날짜만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결국 일본측에서는 야나기하라 공사의 선에서는 일이 해결될 것
같지가 않아서 직접 오쿠보가 전권대사로 가기로 했다.

오쿠보는 20여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군함 류쇼마루로 출발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