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애란 < (주)웰컴 이사 >

자동차를 타지 않고 골목길을 걸을때는 차들이 그 좁은 골목을 헤치면서
가는 모습이 못마땅해 될수 있는대로 길을 막아서선 "이 좁은 길을 꼭 차로
다녀야 하나, 쳇!"하며 욕 까지도 서슴지 않고 해대게 된다.

좁은 골목길을 운전할 때면 비켜주지 않고 느릿느릿 걷는 사람들에게
불평을 해댄다.

"좀 비켜주면 뭐 덧나나. 일부러 저런다니까..."

우리의 삶이란 대부분 자기편한 쪽의 생각을 많이 하고 그것이 옳다고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내가 20년 가까이 하고 있는 광고일은 늘 남의편
눈치를 살피는 일이다.

소비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무엇때문에 그것을 구매하는 것일까,
광고주는 어떻게 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까, 광고가 나간 후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편 생각을 최소한 줄이고 남의 편 생각을 알아내기 위해 소비자조사
컨셉테스트 사후조사등 각종 방법을 총동원하곤 한다.

요즈음 화제가 되고 있는 "정신대"광고에 대한 여러가지 신문기사와
방송을 대하면서 "자기편"논리의 편파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흰저고리와 까만 통치마를 입은 "정신대 소녀"가 로데오거리에 등장하여
"정복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 역사는 되풀이 될수도 있습니다"라는
카피로 의문을 던지고 있는 이 광고를 만드는데 참여한 한 사람으로서, 그
광고의 탄생배경과 의도 사전 사후 조사등을 통해 검증된 객관적이랄수 있는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광고에 대한 저마다의 시각이 자신의 입장에
의한 자기편 생각에 많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 광고가 간지 얼마되지 않아 주요일간지와 경제지등에서는 "국적의식
일깨우기" 또는 "외제 홍수속 국산품 애용 일깨워"등의 헤드라인 아래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었다.

이 광고는 한일간의 해결되지 않는 사안인 "정신대"가 소재로 되어 있기
때문인지 일본의 기자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마이니치신문등 일본의 대부분 신문에서 이 광고를 보여주면서
"종군위안부, 광고에 등장"이라는 타이틀 아래 그들 자신의 의견제시보다는
위안부를 지원하는 시민단체가 항의를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논쟁의 방향에 새로운 시각를 제시하였다.

한 방송국에서는 뉴스시간을 통해 "이 광고에 대한 비난이 심하다"는
내용을 방송하면서 광고의 지나친 상업성을 비난했다.

그 뉴스를 본 시청자들은 찬성과 반대의견, 즉 "상업적으로 역사적인
수치를 드러낼수 있느냐"는 측과 "광고도 사회적인 이슈를 소재로 삼을수
있고, 이 광고는 역사의식과 자각을 깨우쳐 주었다"는 또 다른 의견을
수없이 보내왔다.

한편만의 의견을 보도하게된 근본원인은 기자자신이 "이 광고에 문제가
있다"는 자기편의 생각과 "정신대는 깊숙이 들여다보면 국민이 모르는
너무나 복잡한 문제가 있다"는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정신대할머니는 들춰내는 것조차 아픔이기에 감추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고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봉사자들은 "잊혀져가는 정신대 문제를
좋은 취지로 광고하려는 것 까지는 이해하고 찬성한다. 그러나 ''정복 당할
것인가, 정복할 것인가''라는 카피는 정복자의 입장에 서보면 또 다시 그런
일을 저지르겠다는 뜻이 되지 않겠는가. 이 카피를 수정해 달라"고 하였다.

"일본은 없다"는 책을 쓴 전여옥씨는 한 신문칼럼에서 "정신대 운동화
광고의 공익성"이라는 타이틀 아래 "정신대 문제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은
남성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라고 반론하면서 "유태인들은 그들의 나치학살
을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우리는 당한 과거사를 부끄러워 하기만 하느냐"면서
이 광고가 "공익광고"의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 광고에 대한 호감도 공감대 부분에 대해 여러모로 조사해
90%의 찬성과 10%의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결과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10%의 견해를 무시한채 90%쪽이 전체인양 믿으려하는 "내편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걱정스러워진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