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에게 이탈리아는 여전히 3F로 알려져 있다. 3F가 무엇인지 아시는지. 대부분 독자는 Fashion(패션), Food(식품), Furniture(가구 및 디자인)를 쉽게 알아맞힐 것이다.여기에 네 번째 F를 추가하자면 드림카의 상징인 Ferrari(페라리)를 들 수 있겠다. 이탈리아는 페라리뿐 아니라 람보르기니, 마세라티와 같은 럭셔리카로 유명하다. 마세라티를 주한 이탈리아대사관 공관 차량으로 사용하는 것은 나의 꿈이기도 하다.이탈리아는 오토바이 브랜드도 유명한데 예를 들면 두카티는 스포티한 취향의 바이커, 베스파는 ‘적당히 역동적인’ 취향을 지닌 바이커의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 한국 대중의 집단적 상상력 속에서 이탈리아는 이런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하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이탈리아는 이보다 훨씬 많은 강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기초과학이다. 이탈리아는 21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 중 14명이 과학 부문 수상자다. 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사람이 깜짝 놀라곤 한다.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탈리아는 천문학과 현대 과학의 아버지인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1942년 최초의 원자로를 건설한 핵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나라가 아닌가.또 1971년 최초의 상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설계한 과학자 페데리코 파진과 복잡계 연구로 가장 최근인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조르조 파리시도 있다. 며칠 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설립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세계 최대 규모 연구소 수장 역시 이탈리아 출신 여성 과학자 파비올라 지안노티다.흥미로운 점은 한국과 이탈리아가 과학 연구에서 상호보완적이라는 사실이다. 이탈리아는 전통적으로 기초과학 부문에 공을
소설가로 데뷔한 지 30주년이다. 시인 등단은 그 4년 전에 했으니 문인으로서는 34주년이다. 어느 서점 측에서 행사를 기획하며 그런 말을 하길래, 아, 벌써 그렇게 됐나 싶었다. ‘온종일 개미처럼 일하는데도 뭐 하나 성장한 것 없이 또 밤이구나.’ 이런 자괴감이 매일이다.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문학이고 그런 문학보다 더 어려운 게 먹고살려고 하는 문학이다. 다만, 한 가지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해왔다는 것만이 조용한 자부심이다.공사판 막노동을 많이 해봐서 하는 말인데, 글쓰기는 정신노동이 절대 아니다. 육체노동이다. 원고를 마치고 누우면 온몸이 부서지고 어질어질 천장이 무너져내린다. 예술가인 척하는 관종들이 넘쳐나지만, 예술가가 되고 싶으면 장인(匠人)이 먼저 돼야 한다. 예술가는 노동자이고, 노동자가 아닌 예술가는 사기꾼이다.미국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 중 전선에서 낙오, 독일군의 포로가 돼 드레스덴 지하 고기저장고에 감금됐는데, 연합군이 사흘 밤낮 ‘원폭만큼의’ 소이탄들을 쏟아부어 도시 전체를 용광로로 만들어버렸다. 불길이 사그라든 뒤 지상으로 기어 올라온 보니것은 젤리처럼 녹아 눌러붙어버린 인간과 문명을 보았고 미국으로 돌아가 소설가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아무리 무거운 비극을 다룬들 낄낄거리며 읽게 되는 소설과 산문을 썼다.2007년 4월 11일 여든다섯의 나이로 죽은 그의 유고집 <아마겟돈을 회상하며>의 서문은 그의 아들이자 작가인 마크 보니것이 썼는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일주일이나 걸려서 쓴 글의 원고료가 50달러라고 불평했을 때, 아버지는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알리는
한국은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 노벨상의 계절마다 우리가 던진 질문이었다. 올해는 달랐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경제학상도 한국과 연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와 사이먼 존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 교수는 국가 번영의 이유를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에서 찾았다.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원인으로 제도 차이를 들었다. 경제적 인센티브를 중시하고 공정한 경쟁을 인정한 ‘포용적 제도’가 남한의 번영을 이끌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배달앱 상생협의체 공회전한국을 성공적인 국가 모델로 제시한 이들의 분석에 비춰 최근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배달앱 수수료 갈등 사태를 복기해보자. 이 사태의 중심엔 배달의민족이 있다. 국감장에 불려 나온 피터 얀 반데피트 우아한형제들 대표는 회사 이름에서 ‘우아한’을 떼라는 질타까지 들었다. 한때 ‘혁신기업’이었던 배달의민족은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됐나.배달의민족은 2010년 음식점 번호를 모아놓고 연결해주는 플랫폼 회사로 시작했다. 이후 배달 중개 서비스로 발전했다. 한국은 자영업의 나라다. 외환위기 이후 많은 사람이 퇴직금으로 자영업에 뛰어들면서 요식업 경쟁은 점점 심화됐다. 배달의민족은 마땅한 홍보 수단이 없는 자영업자들에게 매력적인 광고 플랫폼을 제공했다. 세상에 없던 음식 배달 문화를 만들고, 라이더라는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했다. 그리고 코로나19가 들이닥쳤다. 외식이 어려웠던 이 시기 배달앱은 그야말로 대호황을 맞았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