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이붕총리(66)에 대한 서방세계의 평가는 크게 두가지로 양분된다.

실무행정 경험과 정치력을 겸비한 "균형잡힌 정치가"라는 평이 있는가
하면 배후 원로세력에 의해 조종되는 "무소견 기회주의자"라는 시각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총리가 지난89년6월 발생한 천안문사태 당시 무력진압을
주도했다는 점을 들어 그를 "보수 강경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같은 외부세계의 평가가 어떻든 이총리는 중국 국무원(정부)을 이끌어
가고 있는 행정수반으로서 중국정계에서 결코 무시할수 없는 파워를 가진
인물이다.

특히 이총리는 강택민국가주석과 함께 중국최고실력자 등소평이 추구하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지휘하는 양두마차로 통하고 있다.

이총리의 정치.경제 정책은 계획과 통제를 중시하는 사회주의 원칙에
기울어져 있다.

그는 보수원로의 대표격인 진운의 "조농경제(제한적 자율하에서 행정적
수단을 통해 경제를 운용)"를 신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최근들어 등소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원칙에 따라 시장경제 원리를
폭넓게 수용하는 경제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의 현재 주요 지도자중 이총리 만큼 쾌속 승진한 인물도 드믈다.

이총리가 중국정계에 자연스럽게 발을 디딜수 있었던 것은 11세되던
1939년 고 주은래총리의 양자가 되면서부터.

이후 이총리는 권력의 핵심부에 맴돌면서 지도자 수업을 받아왔다.

이총리는 지난48년 소련유학생으로 선발돼 소련유학의 행운을 잡았으며
55년 귀국과 함께 당시 중국최대 수력발전소였던 길림풍만발전소장을 시작
으로 기업및 정부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이총리의 고속성장은 그의 숨은 노력과 출중한 능력이 뒷받침 됐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다.

그는 러시아어에 정통할뿐만 아니라 지난73년부터 독학으로 영어를 익혔다.

또한 컴퓨터 조작법을 배워 수도권 핵발전공사의 손익계산을 스스로
뽑아낼 정도의 과학적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86년에는 많은 사람의 반대를 무릅쓰고 광동성 대아만 핵발전
공사를 착공하는 "뚝심"도 있다.

이총리는 차세대 정치를 이끌어갈 소련유학파 "제3세대 기술관료"의
선두주자이자 혁명열사의 자제그룹인 "태자당"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또한 실무경험을 겸비한 그는 중국 지도자중 누구보다 튼튼한 정치적
기반을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 한우덕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