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프랑스에서 산 인조수염인 줄을 알 길이 없는 그들은 그 수염
참 유난스럽게 생겼구나 싶은 것이었다.

만약 청나라 고관들이 일본의 실권자가 서양에서 구입한 인조수염,즉
가짜수염을 달고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아마도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을 것이다.

더구나 위정자로서의 위엄을 위해서 그런 수염을 달았다면 냉소를
떠올리며 속으로 경멸을 했을지도 몰랐다.

회의는 처음부터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속에서 정중하게 진행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일본의 실권자와 청나라의 최고위층이 직접
만나서 회담을 하는 것은 양국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고,그리고
친선관계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대만 문제로 팽팽히 맞서게
된 현안을 담판하기 위한 만남이었으니 말이다.

양측의 입장은 실권자가 직접 만났다고 해서 그전의 야나기하라
공사를 통한 교섭 때와 기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었다.

오쿠보는 먼저 대만의 생번과 그 거주지역의 귀속문제로 청나라의
약점을 찔렀다.

생번이 청나라의 통치권 밖이라면 그 거주지도 영토라고 할수 없지
않으냐는 논리였다.

그러니까 그곳에 출병한 일본군을 청나라측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알기에는 만국공법에 어떤 지역을 소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땅을 관리해서 그곳에서 이득을 올리고 있지 않으면 소유의 권리, 즉
주권은 발생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어요.

대만땅 중에서 생번의 거주지역은 만국공법상으로도 분명히 귀국의
영토가 아닙니다"

배안에서 보아너스에게 배운 국제법 지식을 동원하여 늘어놓는 오쿠보의
주장에 대해서 문상이 정중히 그러나 단호히 반박을 했다.

"만국공법은 서양사람들이 자기네 마음대로 만든것 아닙니까. 서양의
법을 우리 동양 국가에서 들먹일 필요가 있을까요? 일본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청나라는 그런 법은 염두에 두질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법이 있으니까요"

오쿠보는 같은 동양 국가의 실권자로서 그 말에 약간 곤혹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구미 여러나라를 2년가까이 돌아보아 눈이 동서로 활짝
열려있는 터이어서 서슴없이 받아넘겼다.

"비록 서양에서 만든 법이라 할지라도 그 이치가 타당하다면 배척할
이유가 없지요. 배척한다고 해서 잘 되는 것도 아니고요.

실제로 귀국도 이미 서양의 법에 의해서 그들 나라와 조약을 맺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법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말은 공연한
허세에 불과하지요"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