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축협 신용사업의 앞날을 얘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신경분리" 문제다.

현행 제도로는 각조합이 본업인 경제사업은 뒷전으로 한채 신용사업에
치중하는 현상을 고칠수 없으니 이 둘을 완전 분리.운영케 하자는게 이
논의의 요지다.

좀더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분리"의 처방전은 현재 2단계로 제시돼
있다.

우선은 단기적으로 두 부문을 각각의 사업본부로 나눠 운영한다는게 1단계
내용이다.

독립채산제를 채택,사업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인사와 경영권을 행사할수
있도록 한다는 얘기다.

2단계는 별도은행의 설립.

농.수.축협의 신용사업본부를 합병, 농수산은행(가칭)을 설립하자는
것이다.

농수산은행은 특별법을 제정, 특수은행화하고 자본금은 농.수.축협이
전액출자하는 형식으로 돼있다.

이같은 2단계 신경분리 방안은 농림수산부를 비롯, 농발위 농촌경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금융발전심의회 경실련등 수많은 기구.단체들이 주장해
왔다.

금융자율화및 금융시장 개방에 대응, 신용사업의 전문성을 높일 필요가
있고 농.수.축협이 신용사업에 중복투자함으로써 발생하는 낭비도 줄일수
있기 때문이다.

또 도시및 농촌지역에서 농.수.축협간의 예금유치경쟁을 방지하고 농수산
자금의 공급창구를 일원화할 수 있는 등의 메리트도 많다.

농.수.축협으로서도 농수산은행이 생기면 협동조합이 신용사업에만 몰두
한다는 여론에서 벗어날수 있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는 농발위등의 건의를 대폭 수용, 올4월 자체개혁방안
을 내놨다.

앞으로 중앙회장의 권한을 농정활동 지도 교육등의 업무로 제한하고 신용
사업은 "은행사업본부"로, 경제사업은 "종합사업본부"로 분리시켜 본부장
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게 개혁안의 골자다.

수협과 축협도 독립사업본부제로 가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별도은행을 설립하자는 데 대해서는 농수축협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농협은 신용사업 통폐합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지적한 문서까지
만들어 정부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신용사업을 분리하면 전문성은 높일수 있을지 몰라도 그렇지 않아도
자립기반이 약한 경제.지도사업이 더욱 위축될 것이라는게 주된 반박근거
이다.

게다가 신용사업 분리시에 경제사업이나 지도사업과의 연결고리를 끊는다면
이는 곧 농업금융기관을 시중은행으로 만드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종석농협중앙회저축부장은 "농수산물을 가공해서 판매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과 시설이 필요하다"며 "지난 61년 농업은행과 구농협을 합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때문"이라고 말한다.

경제사업과 신용사업의 겸영으로 "범위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농협은 또 은행이 되면 주무감독부서가 재무부로 이관돼 농정과 금융의
유기적 연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농업구조개선 사업이라는 대사를 앞두고 신용사업을 분리하는
것은 "큰 강을 건너야할 때 달리던 말을 갈아타는 격"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용사업의 분리문제는 <>농업구조개선사업이 완료되고 <>회원조합
이 합병등을 통해 자립기반을 확보, 농업자금지원기반을 담당할 수 있을
때에나 가서 검토돼야 한다는게 농수축협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용택농촌경제연구원책임연구원은 "''경제사업=적자''라는
도식적 발상을 깨야한다"고 주문한다.

민간기업이 유통사업을 유망분야로 판단, 너나 없이 뛰어드는 것만
봐도 하기에 따라선 경제사업에서 얼마든지 흑자를 볼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신용사업이 경제사업을 먹여 살야려 한다"는 농협의 주장은
근거가 빈약해지는 셈이다.

황민영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이사장도 "금융기관간의 경쟁이 점점
격심해지는 상황에서 신용사업부문의 흑자도 앞으로는 장담할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농수축협 신용사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이들 중앙회단위의
신용사업을 분리해 별도 중앙금고를 설립하고 나머지부분은 농정지도및
교육활동에만 전념하는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1라운드는 농.수.축협의 "승리"로 끝났다.

최근 정부는 경제차관회의에서 신경분리와 관련, 농수산은행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없이 이의 설립을 위한 "기획단"을 설치.운영하는 선에서
논의를 마무리지었다.

한마디로 정부가 농.수.축협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말이 기획단이지 사실상의 백지화인 셈이다.

아직까지는 경제사업을 지원해줄 만한 뾰족한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농림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농협의 로비력에 새삼 놀랄 뿐"이라며 "그
사람들은 주무부처(농림수산부)를 빼놓고 국회위원과 내무부등을 통해
압력을 넣는 우회전술을 구사했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전국조직인 농협을 동요케 해선 안된다는 식의
정치논리에 경제논리가 또한번 굴복했다"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농수산은행은 말만 요란했을뿐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사람 하나 없이
유야무야됐다.

적어도 가까운 시일안에 농수축협이 "은행"으로 옷을 갈아입을 가능성은
없어진 셈이다.

어찌보면 성격이 워낙 판이해 "규모의 경제"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당분간 농수축협은 이 두가지를 모두 챙겨 나가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게 농협 내외부의 컨센서스다.

그래서 두 사업간의 관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가 "일방의존적" 흑백관계였다면 앞으로는 "상호보완적" 보색관계
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야만 신용사업도 금융기관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추고 다른 은행들과
싸움을 치러 나갈수 있다.

신토불이는 어떨지 몰라도 신경불이는 영원히 계속되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