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한가지 물어보겠어요. 일본도 서양 여러나라와 조약을 맺었는데,
그것을 자의에 의해서 맺었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그들의 힘에 밀려서 도리없이 고개를 숙인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의
법을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받아들이다니, 일본의 자존심이 의심스럽군요"

"누가 절대적이라고 했나요? 이치에 맞는다면 배척할 이유가 없다고
했지"

문상의 뒤를 잇듯 이번에는 심계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지요. 우리가 이해할수 없는 것은 일본인이 대만의 생번
에게 죽음을 당한 것도 아닌데,왜 일본정부에서 군대를 파견하는 과격한
시책을 펴는가 하는 점이에요. 피살된 것은 류큐인이잖아요"

"류큐는 일본의 속국이니까, 우리가 나설 수밖에요. 귀국에서 대만의
생번은 통치권 밖이니 책임질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도리없이 출병을
한 겁니다"

"대만의 생번에게 피살된 류큐인들은 우리 청나라에 조공을 바치러
오던 사람들이었어요. 류큐는 옛날부터 청나라의 속국이에요.

그런데 일본도 손을 댄거죠. 그러니까 생번이 류큐인을 죽인 사건은
우리가 보기에는 우리 국내문제라고 할수 있어요"

"현재의 류큐는 엄연히 우리 일본의 영톱니다. 류큐번으로 되어있단
말이에요. 곧 그곳도 현으로 개편할 예정입니다"

"그것은 일본측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그곳엔 엄연히 류큐왕이
있잖습니까"

"자기네가 왕이라고 부를 뿐이지요. 우리는 번주라고 간주하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대만에 군대를 파견한 것은 류큐의 번주가 생번의
징계를 탄원해 왔기 때문이에요.

앞으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귀국에서 책임을 지고 조치를
했더라면 우리가 출병할 까닭이 없었지요"

그때까지 말없이 듣고만 있던 섭정인 공친왕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한마디 하겠소. 백보를 양보해서 일본측의 주장대로라면,그럼
이제 목적을 달성한 셈 아니오. 류큐왕의 부탁에 의해서 대만의 생번을
징계했으니 당연히 철군을 하는게 옳지 않소. 그런데 무슨 의도로
철군을 거부하는 건가요"

"귀측의 책임회피 때문에 결국 우리가 막대한 군비를 들여서 대만 파병을
단행하게 됐는데, 지금 이 상태에서 철군을 하면 앞으로 또 그런 사건이
발생 안한다는 보장이 없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막대한 비용만 들이고 얻는게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첫째는 귀측에서 책임회피에 대한 사과와 그런 사건의 재발
방지를 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응분의 보상금을 지불해야 되는
것이지요"

일본측의 요구는 결국 응분의 보상금인 셈이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