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정치가 혼란스러워지거나 흉년이
들어 민심이 흉흉해지면 항간에 떠돌던 자연의 이변현상이 지루하리
만큼 많이 기록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중종이 폭군 연산을 몰아내고 "유신지치"를 내세우며 보위에 올라
선조의 병폐를 개혁해 나가던 중종초는 정치도 혼란의 극을 가중시켰던
때였다.

그랬던만큼 실록에는 불길한 조짐을 나타낸 자연의 이변이 어느왕때보다
많이 기록돼 있다.

"한 겨울에 복사꽃이 피었다" "초저녁 북쪽하늘에 불처럼 붉은 기운이
돌았다" "한강 상류의 물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 흘러내렸고 서울의 한강
물은 검은 빛을 띄었다" "벼락이 종묘동산 소나무를 치고 제물로 쓰려던
소가 사당안에 들어가 죽었다"

이런 쓰잘데 없는 일들을 기록한 사관들의 속뜻을 지금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변이 잇달아 기록될때는 그만큼 당시의 사회가
어지러웠다는 것을 실록의 기록들이 입증해 주고 있다.

예컨대 단종의 "노산군일기"말미에는 매일 그의 억울한 죽음을 예고하듯
"경북궁 근정전에서 부엉이가 울었다"는 기록이 숨가쁘게 이어지고 있는
것도 이와같은 맥락으로 이해할수 있을것이다.

옛사람들은 임금이 하늘의 뜻을 이어받아 정사를 잘 펴나가면 천지의
화기가 감응하게 되고 그렇지못하면 원망과 한탄을 불러일으켜 천지의
감응이 어그러지는 탓으로 이변이 일어난다고 믿었다.

따라서 자연의 이변은 인간의 잘못에 대한 하늘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흥미있는 것으 실록에서는 사관이 직접 확인한 이변만이 아니라 항간에
떠도는 소문까지 상세하게 기록해 놓았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가 불안해지면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청와대의 불상을 치워버린탓으로 대형참사가 일어난다고 떠들석하더니
이번에는 청소년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젊은 랩가수그룹의 노래에
악령을 찬미하는 내용이 들어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져 국교3,4년생
들까지 확인하느라 법석들이다.

뿌리도 잎도 없는 것이 이런류의 소문이지만 왜 하필이면 세상의 음침한
구석들을 배회한다는 "악령이야기"가 등장한 것인지 안스럽기만 하다.

이런일도 학자들이 말하는 사회구성원의 윤리적 지체현상이나 불량적응
현상때문에 생겨나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