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남북경협확대 1단계조치"로 남북간 경제협력은 실제 본격화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물꼬는 트였지만 "봇물"이 흐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게 중론이다.

무엇보다 남북간 투자보장협정등 제도적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은데다
북한의 투자여건이나 태도가 아직은 국내기업들의 기대수준에 못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선 정부는 1단계 조치에서 "생활용품등 소규모 제조업에 한해 시범적인
대북투자사업을 허용하되 전적으로 민간기업 책임하에 추진한다"고 발표
했다.

한도는 밝히지 않았지만 소액투자를 우선한다는 원칙도 천명했다.

더구나 해당기업의 책임을 유난히 강조하며 남북경제협력기금의 지원도
"당국간 경협사업"에만 한정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정부로선 극히 조심스럽게 남북경협의 문을 연다는 인상이 짙다.

정부가 이같이 남북경협 재개의 행보를 천천히 하려는 것은 투자보장협정
이나 청산계정등 남북경협에 필수적인 제도적 요건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
크다.

박양우상공자원부 무역협력과장은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각종 제도적 안전판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쪽만 경협의 문을 활짝
열어 놓을 경우 국내기업들의 무분별한 대북투자경쟁등 부작용을 초래할수
있다"며 "정부로선 일단 실패하더라도 피해가 적은 소규모 경공업분야의
투자부터 유도한다는게 기본방침"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소규모 시범사업의 경우도 일정규모 이하로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부터 대북투자를 허용한다는 내용의 "과당경쟁방지대책"을 마련중이기도
하다.

게다가 정부는 민간차원의 경협확대조치는 일단 취했지만 남북경제공동
위원회 재개등 남북대화 제의는 북한의 태도변화를 주시하되 우리측이
나서서 서둘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대화 중단 자체가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였던 만큼 당국간 대화재개는
북한이 나서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논리다.

그만큼 남북경협의 제도적 장치마련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고 그동안은
소규모 투자사업 밖에는 가능하지 않다는 뜻이다.

정부의 이같은 "소극성"말고도 북한의 기본적인 투자여건이나 태도는
남북경협 활성화에 무시할수 없는 복병이다.

무엇보다 남북경협 확대에 대한 북한당국의 입장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기본적으로 극심한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유치엔
적극적이다.

그러나 한국기업의 진출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이 부분적인 대외개방을 하더라도 정치적인 부담때문
에 남쪽 기업보다는 미국 일본 독일등 서방기업의 투자유치에 더욱 열성적
이라는 분석이다.

통일원관계자도 "정부의 제1단계 경협확대 조치발표이후 북한당국은
이례적으로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남쪽에서 아무리 열을
내도 북쪽에서 호응을 하지 않으면 남북경협확대조치는 공허한 메아리에
그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시설(SOC)도 경협확대의 걸림돌중 하나다.

이상직산업연구원(KIET)책임연구원은 "대북투자가 활성화되려면 기초적인
투자기반시설이 갖춰져야 하나 북한은 현재 도로 항만 전력등 투자여건이
형편없는 실정"이라며 "기업들이 남북경협에 대해 너무 장미빛으로 접근
하는건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전후 사정때문인지 국내기업들도 대북투자에 냉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귀래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통상진흥본부장은 "최근 대북투자관련
업체들을 중심으로 간담회를 가진 결과, 기업들이 남북경협에 관심은 많지만
실제 투자시기는 투자보장협정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후로 미루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국내 대기업들이 SOC건설이나 관광단지개발등 대규모 대북투자의 경우
제3국 업체들과 공동으로 진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업계의 분위기를 엿보게 하는 것이다.

결국 정부의 1단계 조치이후 남북경협은 그 동안의 위탁가공에서 한정된
지역에 대한 소액의 경공업투자로 차분히 진전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규모 대북투자등 남북경협의 본격화는 1단계 조치의 진전상황에 따라
보다 빨리올 수도, 의외로 더뎌질 수도 있는 셈이다.

< 차병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