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거나 총장으로 선임될수
없다는 법원의 1심판결이 나왔다.

그러한 문제가 법정으로 비화되어 사회적 논란거리가 된 나라는 그 유례를
찾아 보기란 힘들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교육부의 태도다.

"외국인은 초빙교원 이외에는 국내인과 동등한 위치의 정식교원이 될수
없다"는 교육공무원법 제31조제1항에 위배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는데도
당국은 구차한 변명만 늘어 놓고 있으니 말이다.

그 법이 생기기 이전인 과거 100여년동안이나 그런 관행이 있어 왔다거나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쩔수 없었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말이다.

교육당국자들이 그동안 외국인의 대학교 임명이나 총장 선임이 실정법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리는 만무하다.

그 사실을 정녕 모르고 있었다면 교육부란 있으나 마나한 존재일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당국이 그 사실을 알고도 위법을 묵인 수수방관해
왔다는 점에 모아진다.

그것은 분명히 업무상 배임행위에 해당된다.

당국이 어떤 논리로 변명을 늘어놓더라도 자유민주주의 실현의 근간인
법치원리를 철저히 외면해 왔다는 지탄과 책밍을 면할수 없게 되었다.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시사해 주듯이 실정법에 규정되어 있는 규칙은
어떤 경우에라도 지켜져야만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려를 더욱 짙게 만드는 것은 법을 지켜가는데 앞장서야 할 당국이
위법을 묵과해 왔다는 점이다.

다른 학사행정의 위반사항에는 시시콜콜 간여하기를 마다하지 않던 당국이
유독 그 위법사실만은 입을 다물고 있어 그 속셈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보더라도 당국이 그동안에 교육공무원법의 자격제한
규정이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었다면 그것을 현실에 맡게 조정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미국의 경우 외국인을 대학교수로 채용하려 할때에는 대학당국이 연방정부
로부터 당사자의 취업비자를 받게 되어 있는가 하면 일본의 경우에는 대학
교수의 외국인 채용자격문제를 지방자치단체의 재량에 맡겨 제한법규를 두고
있지 않다.

어떻든 법이란 당국자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지켜갈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수 있다.

법을 외면해 버린 당국, 외국시민권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고 위법판결이
나자 그런 법조항이 있는줄 몰랐다고 발뺌만 하는 대학당국자가 있는한
법치주의의 부재현상이 되풀이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