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18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세계최대 국제패션견본쇼인 파리컬랙션
이 열렸다.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영국등 각국에서 60여명의 유명디자이너들과 20여
패션업체들이 참가, 95년 봄 여름의 패션경향을 예고한 이번 행사에는
한국의 디자이너들도 5명이 참가, 한국적인 이미지를 한껏 뽐내며 세계
패션가의 주목을 받았다.

이영희 이신우 진태옥 홍미화 안피가로씨등 5명이 그 주인공이다.

이처럼 한국패션이 세계로 뛰고있다. 국내디자이너들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봄에 걸쳐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파리 도쿄 뉴욕컬렉션에 참가하는 우리 디자이너들의 숫자가 늘고있고
해외에서의 평가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패션컬렉션참가를 계기로 해외상설매장설치,백화점입점 직수출판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들 톱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각 패션디자이너들과 패션업체들이 최근
몇년사이 앞다투어 매장 쇼룸 스튜디오를 해외에 설치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패션이 세계를 무대로 뛰는 시대가 온 것이다.

패션중심지에 매장등을 개설하거나 준비하고 있는 디자이너나 업체들의
숫자가 이미 20개를 넘어서고 있다.

문영사(대표 문영희)가 지난 6월 파리에 매장과 쇼룸을 설치한 것을
비롯 텔레마트(대표 허영석)도 92년 프랑스 파리시내에 약 50여평의
쇼룸을 열었다.

홍미화씨도 지난해 11월 50평규모의 매장 "홍크리에이션"을 파리시내에
열었고 95년 4월 중으로 또다른 매장을 개설할 계획이다.

이영희씨도 최근 파리에 개인매장을 개설했다.

이밖에 규성(대표 조영자)의 트로와조매장이 84년8월 뉴욕에 문을 연
것을 비롯 신아통상(대표 권형종)의 뉴욕쇼룸이 92년6월 개설됐다.

또 원진산업(대표 김매자)도 올 1월 뉴욕 맨해튼에 매자인터내셔널
이라는 쇼룸과 매장 김매자패션을 올 5월에 개설했다.

재승실업(대표 이병수)도 91년 뉴욕브랜치라는 82평규모 매장을 뉴욕에
세웠다.

이밖에 제브라상사의 박주영씨는 일본 요코하마시에 숙녀복매장을
개설했다. 또 (주)데코는 중국 천진과 북경에 직매장을 개설하기도
했다.

디자이너들과 업체의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이에 대한 당국의
지원도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상공자원부도 최근 디자이너의 창작정신이 반영된 패션제품들이 일부
계층을 위한 사치품이 아니라 일반 의류제품에 비해 5~10배의 부가가치
를 갖는 첨단수출상품이라고 인식,디자이너들이 해외시장에 진출할 때
종합상사와 연계시키는등 "체계적 지원"을 약속한 바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업계도 섬유산업에서의 패션의 중요성을 인식해
가고 있다.

패션산업이 섬유제품의 고급화 고부가가치화를 결정하는 핵심요소로서
후발개도국의 저임금 공세를 극복하고 수출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패션산업강화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하의 섬유수출 무한경쟁에
대비하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단순섬유제품과 패션이 가미된 제품은 그 부가가치면에서 엄청난
격차를 보인다.

예를 들어 패션디자인상급의 순견넥타이의 경우 한국제품이 4만3천원인데
비해 이탈리아제품은 6만원에 이른다.

블라우스의 경우 상급이 한국산이 30만원인데 비해 이탈리아산은
78만원에 이른다.

대일수출가격으로 따지면 한국산 넥타이가 5백45엔인데 비해 이탈리아산
은 1천5백91엔에 이른다.

블라우스는 한국제품이 4천3백91엔인데 비해 이탈리아제품은 1만6천
8백60엔에 달하고 있다.

그만큼 패션이 가미되면 고부가가치제품이 되는 것이다.

원가절감으로 싼 제품을 생산해도 이제 후발개도국의 저가공세를
벗어날 수 없다.

패션을 통한 고부가가치제품생산만이 섬유산업진흥의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패션산업의 현주소는 여전히 밝은 앞날을 점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우리 패션산업체수는 8백여개로 전의류업체의 10%를
점하고 있다. 그중 자가상표를 판매하는 업체는 6백개에 불과하다.

자기디자인으로 생산하되 타사상표로 납품하는 회사가 2백개에 이른다.
또 그 패션업체의 52%가 종업원 50명이하의 영세기업이다. 30명이하인
업체도 23%나 된다.

패션제품중 약 8%만이 수출되고 있다.

대기업과 디자이너의 협업이 이런 영세성을 벗어나 우리 패션을
세계화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최근 한일합섬은 패션사업부문 강화를 위해 대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전문패션디자이너 홍미화씨를 여성복상표 "레쥬메"의 계약디자이너로
영입했다.

패션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관련단체들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키로 했다.

섬산연 패션협회 유행색협회 텍스타일디자인협회등 패션관련단체들이
패션산업을 집중육성,수출산업화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섬산련은 의류제품유통구조개선조사작업과 함께 95년 중으로 연건평
1천1백평의 패션센터를 착공키로 했다.

디자이너들이 개인적으로 세계를 무대로 뛰고 있는데 반해 정부당국과
업계의 지원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 패션산업만이 섬유무한경쟁시대에 돌파구로 인식되고 있는 시점
에서 정부 당국 업계는 패션산업강화전략 짜내기에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한국패션세계화를 위한 시동이 천천히 걸려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