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되고 틀이 잡혀있는 사회는 언제가봐도 별로 달라지는게 없다.

거리모양, 사는 모습이 1년전 3년전은 고사하고 10년전 20년전과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

유럽이 그런 사회에 속하고 그게 바로 우리와 다른 점이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변화가 전혀 없을수는 없다. 단지 요란하지않게
조용하게 진행될 따름이다.

전경련이 최근 주선한 "국제화 합동연수단"의 일원으로 10여일간 돌아본
유럽 몇나라의 모습도 그런 것이다.

그가운데 인상적인 내용 몇가지를 소개한다.

<>.국제화는 어느 나라에서나 기업의 얼굴을 크게 바꿔놓고 있다.

말로만 독일기업 영국기업이지 실제주인은 외국기업인 경우가 갈수록
늘고있다.

저마다 외국인투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고 자본이 국경과 국적을
초월해서 활발하게 이동하게된 결과이다.

동부 베를린에 있는 삼성그룹의 컬러TV브라운관제조공장(SEB)과 남부
영국의 대우그룹소유 워딩기술센터(WTC)는 한국자본이 그와같은 이동
물결에 낀 경우에 해당한다.

우리입장에서 해외투자는 크게 두갈래로 나뉜다.

저임을 찾아 개도국으로 가는것과 시장을 찾아 선진국으로 향하는
경우이다.

SEB의 경우는 두말할것없이 시장을 찾아간 것이지만 WTC는 시장대신
두뇌를 찾은 케이스다.

그러나 둘다 놀라울정도의 현지화를 바탕으로 운영되고 있고 1~2년밖에
안됐는데도 노사관계나 생산성과 작업능률등 경영의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라는 중간 평가를 받고 있다.

SEB의 경우 9백50명의 독일인 종업원을 불과 15명의 삼성파견요원으로
운영하고 있는가하면 4백15명의 각급 두뇌와 기능공이 96년말 신차개발을
목표로 금년2월부터 연구 설계와 모델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WTC도
본국파견요원은 5명미만이다.

한때 종업원이 9천5백명이나 되었다던 옛 동독회사(WF)를 삼성이
92년9월 신탁청으로부터 불하받아 최신의 자동화공장으로 탈바꿈시킨
SEB는 독일내에서도 드물게보는 성공사례의 하나로꼽힌다.

인수초기 월3만대에 불과하던 생산량이 지금은 16만대로 늘었으며
97년에는 36만대를 목표하고 있다.

SEB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통일후의 북한내 기업경영,특히 근로자들의
의식개혁과 작업능률향상에 중요한 모델케이스가 될수있을 전망이다.

<>.우루과이라운드(UR)타결이 유럽농민들에게 중대한 위협이 되고 있는
현실은 우리와 다름없다.

유럽연합(EU)의 공동농업정책하에서 특히 많은 지원을 받아온 유럽농민
들이고 보면 그 충격은 더 클지 모른다.

그들은 지금 당국이 지원은 커녕 간섭만 더 하려든다고 불평이다.

한 예로 네덜란드 화훼농가는 농약사용등 환경규제강화가 불만이며
그밖의 농가는 목축 낙농 곡물생산제한조치가 못마땅하다.

소득보조대신 가격지지가 근간인 EU농업정책은 지금 부담경감을위해
과잉생산 예방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농민들은 불평을 하면서도 변화에 적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꽃경매시장은 변함없이 활기에 차 있다.

운반에서 경매에 이르는 전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있고
새품종개발로 독보적 지위를 고수하기에 여념이 없다.

<>.성수대교붕괴사고는 역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좋은 일보다 궂은일은 그만큼 소문이 빠른 법이다.

제값을 받아야하는건 기본이고 서두르지 않는 공기,철저한 감리를
이구동성 부실공사를 생각할수 없는 배경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도로공사를 하면 몇군데를 집히는데로 골라 파헤쳐 시방서대로
했는지 검사한다.

안했으면 전구간 재공사를 해야하니까 애시당초 부실엄두를 낼 재간이
없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5년,통일정부가 들어선지 4년이 넘었지만
동서베를린은 건물과 도로모습에서 지금도 확연하게 구분이 가능하다.

99년의 행정수도이전에 대비해 동부베를린을 새로이 건설하고 가꿔야할
상황이지만 결코 서두르는 빛이없다.

그들은 그저 조용하게 공산치하의 때를 차근차근 벗겨내고 있다.

우리의 국제화와 선진화가 갈길은 정말 멀고 해야할 일도 많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