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한국방문의 해", "부실공사추방 원년", "국악의 해", "세계가정의 해".

올해가 무슨 해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정부 각 부처가 연초 경쟁적으로
선포했던 각종 "해"의 사업 성과가 예슨등 후속행정의 뒷바침이 모자라
흉작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15일 교통부 보사부 문화부등 해당부처에 따르면 관련 산업의 진흥과
전국민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추진해온 부처의 94년 선포사업이 말잔치에
불과한 실패작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부처마다 연초 사업을 떠들썩하게 벌려놓고도 예산및 행정적 지원의 부족,
후속행사 미흡, 국민들의 관심부족등으로 용두사미가 돼버린 것이다.

당초 외래관광객 4백만명 유치, 여행수입 42억달러 달성을 목표로 내걸었던
"94한국방문의 해"사업은 목표달성 전망은 커녕 사상최대의 여행수지 적자
(지난 9월말 현재 10억6천5백만달러)를 기록했다.

심지어 오명 교통부장관조차도 "상반기엔 북한핵문제와 하반기엔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일본등 주요 각국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바람에 한국방문의 해
사업은 이미 물건너 갔다"고 말할 정도다.

또 감사원 건설부 건설업계가 주축이 돼 요란하게 출발한 "부실공사추방
원년" 사업도 결국 성수대교 붕괴로 최대부실공사를 입증하는 원년이 되고
말았다.

회사원 신명순씨(37)는 "건축공사장을 지나갈 때마다 부실공사추방 원년
이라는 플래카드를 보는데 배신감과 분노가 치민다"며 "차라리 플래카드를
떼는게 낫겠다"고 말했다.

보사부는 올해를 국제연합(UN)이 정한 "세계가정의 해"에 따라 우리나라
에도 "세계가정의 해"를 선포하고 건전가정 만들기등 각종 사업을 추진
한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보사부는 세계가정의 해 사업추진에 예산을 한 푼도 배정하지
않아 번번이 민간단체나 기업에 손을 벌려 행사를 치르고 사업중간평가
한번 안했다.

문체부가 국악의 대중화등을 내세우며 거창하게 출발했던 "94국악의 해"도
"라이브 카"순회공연등 간판급 행사가 무산되고 정악과 민속악계간의 집안
싸움으로 맥없이 끝나가고 있다.

서울대 박동서 교수(행정학)는 "정부가 각종 해 사업을 선포해 국민들에게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관심을 끌어 모으려는 의도는 좋지만 한건주의식으로
선포만 하고 후속행정이 부족한 건 후진국형 전시행정의 표본"이라고 지적
했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