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노총이 한국경총과 지난2년동안 만들어왔던 사회적합의를 내년부터
거부키로 선언하자 재계는 물론 정부조차도 엄청난 충격속에 휩싸여있다.

그동안 재야노동단체와 노총산하 단위노동조합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앙단위의 노사간 사회적합의가 국내 임금안정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거부방침으로 정부의 임금정책에 대대적인 수정이 불가피
해졌을 뿐 아니라 앞으로 단위노조 임금협상에도 큰 혼선이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3월 사회적합의를 이끌어낼때까지 국가경쟁력강화를 위해
임금안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한국노총이 왜 이같은 "폭탄선언"
을 했을까.

우선 최근 노동계에서 노총의 입지약화를 첫째요인으로 꼽을수
있다.

지난13일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를 중심으로 민주노총건설
준비위원회가 공식출범되면서 민주노총건설을 위한 재야노동세력의
결집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태다.

우리나라의 노동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대그룹노조총연합(현총련),
대우그룹노조협의회(대노협),전국노조협의회(전노협),업종회의등 기존의
4개조직외에도 기아그룹노조대표자회의(기노대),저국지하철노조협의회
(지노협),전국단위농협노조연합(전농노련)등까지 모두 민주노총에
참가할 예정이다.

이처럼 노동계의 힘의 균형이 상당히 이동될 조짐을 보이자 노총으로선
중앙노사간 임금합의를 포기함으로써 노총의 개혁이 가시화되고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천명,조직이탈을 막으려는 의지로 분석되고 있다.

올상반기 내내 단위조합들의 노총탈퇴로 곤혹을 치렀던 노총으로선
무언가 변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여기에다 노총내부의 반발을 감안했으리란 관측이다.

지난2년동안 사회적합의를 해오면서 노총 의장단이 가장 어려움을
겪었던 점이 산하 단위노조의 반발을 잠재우는 일이다.

노총산하 많은 단위노조들은 노,경총 임금합의가 근로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이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노총을
탈퇴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아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내년에 또다시 사회적합의를 할경우 노총 조직이
사분오열돼 노동계에서의 주도권을 민주노총에 뺏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노총이 이날 열린 전국단위노조대표자회의를 통해 "민주노총건설
준비위원회"측에 조건없는 노동계통합을 제의한 것도 이같은 위기감을
타개해보자는 방편으로 보인다.

또하나 정부에대한 불신이 사회적합의를 거부케 했다는 관측이다.

지난3월 사회적합의때 고용보험법적용대상범위를 30인이상으로 약속
했던 정부가 최근 50인으로 축소하려는 움직을 보이자 크게 반발하고
있다.

노총의 박종근위원장도 사회적합의 거부 배경에 대해 "노사정간의
합의사항을 헌신짝처럼 차버리는 정부의 부도덕한 행위에 맞선 결단"
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18일자).